김동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생년 미상 |
출생지 미상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동구는 1909년경 김막동(金莫同)·김상천(金祥千)·박치근·한자선(韓子先)·박화숙(朴化淑)·최석봉 등과 더불어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대일 항전과 군자금 수합 활동을 벌였다. 그는 1909년 4월 22일 의병부대를 이끌고 전북 옥구군 성남(城南)면 유촌(柳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다.
같은 해 6월 7일에도 김막동·김상천 등 2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북 남원군 아산방(亞山坊) 석문동(石門洞)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고, 같은 달 신정리(新亭里)에서도 군자금을 거두었다. 그리고 같은 달 임실군 덕치면(德峙面) 원촌리(遠村里) 이장(里長) 집과 순창(淳昌)군 구미리(九味里) 이장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였다.
이밖에도 같은 해 10월 24일 김상천과 박영렬에게 지시하여 임실군 하신덕(下新德)면 물량리(勿梁里)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게 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동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같은 해 6월 7일에도 김막동·김상천 등 2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북 남원군 아산방(亞山坊) 석문동(石門洞)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고, 같은 달 신정리(新亭里)에서도 군자금을 거두었다. 그리고 같은 달 임실군 덕치면(德峙面) 원촌리(遠村里) 이장(里長) 집과 순창(淳昌)군 구미리(九味里) 이장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였다.
이밖에도 같은 해 10월 24일 김상천과 박영렬에게 지시하여 임실군 하신덕(下新德)면 물량리(勿梁里)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게 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동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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