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현(1884)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낙현은 1884년 10월 24일 평안북도 창성군 군내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직이 중국 지린성 집안현으로 이주했고, 1920년 6월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해 안현 지방검찰관에 임명되어 수특구(受特區) 십리평(十里坪) 및 노일령(老逸嶺) 거주 한인들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0년 6월 18일, 김낙현은 검독(檢督)인 장창현(張昌賢)과 검찰 승명호(承明浩) 등과 함께 국내 진입전을 전개하였다. 김낙현과 동지들은 평북 강계군 문옥면 옥동에서 재산가인 김덕목(金德穆)외 5명에게 군자금 수천원을 모금하였다.
이후 1920년 7월 5일 다시 국내진입전을 계획하고, 동지 2명과 함께 문옥면으로 진입하였다. 김낙현과 동지들은 문옥면 내 삼강(三江)주재소 습격계획을 세우고 총격전을 벌였다. 이들의 공격에 숫적으로 우세한 일경들도 강하게 반격해 와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1920년 9월 6일에는 문옥면으로 재차 진입해 문옥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 150여원을 모금하고, 비치된 모든 서류를 불태워 버린 후 면사무소 자체도 불을 질러 소각해 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 일경에 체포되었고, 고등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강도살인미수·공문서훼기(公文書毁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김낙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0년 6월 18일, 김낙현은 검독(檢督)인 장창현(張昌賢)과 검찰 승명호(承明浩) 등과 함께 국내 진입전을 전개하였다. 김낙현과 동지들은 평북 강계군 문옥면 옥동에서 재산가인 김덕목(金德穆)외 5명에게 군자금 수천원을 모금하였다.
이후 1920년 7월 5일 다시 국내진입전을 계획하고, 동지 2명과 함께 문옥면으로 진입하였다. 김낙현과 동지들은 문옥면 내 삼강(三江)주재소 습격계획을 세우고 총격전을 벌였다. 이들의 공격에 숫적으로 우세한 일경들도 강하게 반격해 와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1920년 9월 6일에는 문옥면으로 재차 진입해 문옥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 150여원을 모금하고, 비치된 모든 서류를 불태워 버린 후 면사무소 자체도 불을 질러 소각해 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 일경에 체포되었고, 고등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강도살인미수·공문서훼기(公文書毁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김낙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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