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헌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김낙헌(金洛憲)[1]
일본식 성명
金德榮憲
이명
김영헌(金榮憲)
자 / 호
치원(致元) / 일와(逸窩)
본관
생몰
경상북도 영천군 환귀면 황강동
(현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2]
추서
대통령표창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낙헌은 1902년 8월 26일 경상북도 영천군 환귀면 황강동(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아버지 김규정(金奎鼎)과 어머니 월성 손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인근의 양평리로 이주하여 본적을 두었다.

1919년 4월 26일 영천군 임고면 양평동의 서당에서 22일 영천면 창구동 시장에서 미리 사둔 붉은 목면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한켠에 '대한독립만세'의 문구를 쓰고 또 다른 한켠에는 '영천군 임고면 양평동 김영헌'이라고 기재하였다. 그는 다음날인 27일 이 태극기를 들고 영천면 창구동 시장에 갔고, 대나무 장대를 구입하여 영천면 공립심상소학교(현 영천초등학교) 내 수로에 가서 태극기를 장대에 묶어 두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후 6시 30분경 일본 순사 보리 손토쿠(補李存得)가 이를 수상히 여겨 그를 신문하자 문득 깃발을 꺼내어 '대한독립만세'라고 수 차례 외치고 곧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그해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개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 6월에는 순종황제가 붕어(崩御)하자 조선시대 전통 상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규탄하는 글을 보냈다가 일본 경찰에 재차 체포되어 수개월간 구금되었고, 1938년에는 '대한복수가(大韓復讐歌)'를 작사하여 지역민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후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5년 7월 7일 별세하였다.

사후 1992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호적명이라고 한다.[2] 인근의 양평리와 함께 경주 김씨 집성촌이다. 김문수경기도지사도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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