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섭(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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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제10대, 12대, 15대,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남정 김동욱의 아버지이다.

2. 생애 [편집]

1916년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명정리(현 통영시 명정동)[1]에서 태어났다. 1934년 일본 교토 히가시야마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57년 해인대학 법정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1939년 2월 6일 부산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한 바 있다.#

8.15 광복 직후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여 통영군 문화부장을 지냈고 1952년에는 통영읍의회 의장에 취임하였다.# 1954년에는 한국제망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1955년 초대 충무시장에 당선되어 1958년까지 역임하였다. 그 사이 1956년 동아일보에 입사하기도 했고, 충무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임기 직후인 1958년 9월부터 1959년 5월까지는 제8대 재단법인 국민학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1959년에 대한어망공업협회 이사장에 취임하기도 했으며#, 고향에서 명정양조장을 경영하기도 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충무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고성군-충무시-통영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최석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정당, 민중당에 몸담다가 1966년 신한당 분당 때 신한당에 입당하여 당무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1967년 2월 신민당이 창당되자 입당하여 중앙정책심의회 부의장 및 중앙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같은 해 6월 열린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최석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충무시-통영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고성군-충무시-통영군-거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은 김주인, 최재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3. 선거이력 [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충무시)
5,232표 (29.51%)
낙선 (2위)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고성군-충무시-통영군)
22,068표 (26.41%)
낙선 (2위)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고성군-충무시-통영군)
44,358표 (45.49%)
낙선 (2위)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충무시-통영군)
27,468표 (53.57%)
당선
1973
제9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고성군-충무시-통영군-거제군)
39,717표 (28.00%)
낙선 (3위)
[1] 인근의 도천동·동호동·문화동·북신동·서호동·정량동·중앙동·태평동·항남동과 함께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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