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돌이나 금속 따위에 새겨진 글, 기록을 뜻한다.
고대 한국사의 경우 사서로 체계화되어 남아있는 기록이 부실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정사 삼국사기 역시 삼국시대 당시에 쓰인 것이 아니라 몇백년은 지난 후대인 고려 때 쓰인 것이다. 이렇게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광개토왕릉비, 북한산 순수비 같이 금석문은 얼마 남지 않은 당대에 기록된 1차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면 신라 태조 성한왕에 대한 기록, 백제의 매국노 예식진에 대한 기록, 연남생의 묘비에 기록된 연개소문 가문의 가계도 등 사서에 없거나 부족한 부분을 금석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사에서 유독 고구려와 신라는 각지에 비석을 많이 세웠고 영토 확장, 지방 시찰, 법령과 판결, 외교관계, 수묘법 등 국가의 통치 행위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알리는 데 활용하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반면 백제나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고대 일본은 다른 기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석문을 많이 남기지 않은 편이고 그 내용도 국가적 기록보다는 사찰 건립이나 지역 단위의 기록이 많다.
고대 한국사의 경우 사서로 체계화되어 남아있는 기록이 부실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정사 삼국사기 역시 삼국시대 당시에 쓰인 것이 아니라 몇백년은 지난 후대인 고려 때 쓰인 것이다. 이렇게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광개토왕릉비, 북한산 순수비 같이 금석문은 얼마 남지 않은 당대에 기록된 1차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면 신라 태조 성한왕에 대한 기록, 백제의 매국노 예식진에 대한 기록, 연남생의 묘비에 기록된 연개소문 가문의 가계도 등 사서에 없거나 부족한 부분을 금석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사에서 유독 고구려와 신라는 각지에 비석을 많이 세웠고 영토 확장, 지방 시찰, 법령과 판결, 외교관계, 수묘법 등 국가의 통치 행위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알리는 데 활용하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반면 백제나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고대 일본은 다른 기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석문을 많이 남기지 않은 편이고 그 내용도 국가적 기록보다는 사찰 건립이나 지역 단위의 기록이 많다.
2. 한국의 주요 금석문 목록 [편집]
3. 외국의 금석문 [편집]
- 함무라비 법전도 금석문의 형태로 전해진다.
- 고즈케 삼비(上野三碑)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