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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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교 |
1. 소개 [편집]
2. 이름과 역사 [편집]
1924년 동아일보에 실린 관수교# |
건립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담겨있다. 일제는 현재의 남산 예장동 일대를 일본인들의 전용공간으로 만들면서 통감부와 통감관저[1], 일본군 주차군 사령부[2] 등을 세웠다. 이른바 왜성대이다. 왜성대에서 순종황제가 머물던 창덕궁에 가려면 종로를 거쳐 남대문로를 통해 빙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일제는 자신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왜성대와 창덕궁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길을 뚫었고, 청계천을 통과하는 다리로 놓은 것이 바로 관수교였다. 즉, 관수교는 일제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세운 다리였던 것.[3]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당시 사라졌고, 2000년대에 진행된 청계천 복원공사 때 새로운 다리로 재건되었다.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과 삼성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당시 사라졌고, 2000년대에 진행된 청계천 복원공사 때 새로운 다리로 재건되었다.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과 삼성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3. 특징 [편집]
- 길이 22.5m, 폭 25.5m 규모이다. 3차선으로 종로방향 일방통행만 가능하다.
4. 교통 [편집]
4.1. 지하철 [편집]
4.2. 버스 [편집]
5. 여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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