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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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교량
상류 방면
이름
하류 방면
관수교
목차
1. 소개2. 이름과 역사3. 특징4. 교통
4.1. 지하철4.2. 버스
5. 여담

1. 소개 [편집]

觀水橋 / Gwansugyo

청계천다리이다.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7번째 다리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화문로(장사동)와 중구 충무로(입정동)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2. 이름과 역사 [편집]

이름은 조선시대 이 근처에서 청계천 준설사업을 담당하였던 관청인 준천사(濬川司)가 수위(水)를 관측(觀)하였다는데서 유래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처음 세웠다.
1924년 동아일보에 실린 관수교#
건립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담겨있다. 일제는 현재의 남산 예장동 일대를 일본인들의 전용공간으로 만들면서 통감부와 통감관저[1], 일본군 주차군 사령부[2] 등을 세웠다. 이른바 왜성대이다. 왜성대에서 순종황제가 머물던 창덕궁에 가려면 종로를 거쳐 남대문로를 통해 빙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일제는 자신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왜성대와 창덕궁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길을 뚫었고, 청계천을 통과하는 다리로 놓은 것이 바로 관수교였다. 즉, 관수교는 일제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세운 다리였던 것.[3]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당시 사라졌고, 2000년대에 진행된 청계천 복원공사 때 새로운 다리로 재건되었다.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삼성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3. 특징 [편집]

  • 길이 22.5m, 폭 25.5m 규모이다. 3차선으로 종로방향 일방통행만 가능하다.

4. 교통 [편집]

4.1. 지하철 [편집]

4.2. 버스 [편집]

5. 여담 [편집]

[1]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로 바뀐다.[2] 1908년에 용산으로 이전하고 이 자리에는 조선헌병대가 들어섰다.[3] 실제로 현재 관수교 북쪽 정방향으로 창덕궁 돈화문이, 남쪽 정방향으로 남산골공원이 있는데, 공원 자리에는 조선헌병대가 있었다. 창덕궁과 조선헌병대까지 일직선으로 쭉 뚫려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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