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낙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菅洛
(233 ~ 290)
서진 시기의 인물. 자는 승(勝).
사서 기록이 아닌 금석문 기록에서 나오는 여성으로 그녀의 묘비인 《관씨부인묘비(菅氏夫人墓碑)》즉《서군부인관씨지묘비(徐君夫人菅氏之墓碑)》가 1930년 하남성 낙양시에서 출토되었다.
대군 사람으로 효성이 독실한 집안 출신이고 251년에 서(徐)씨와 결혼했으며, 그의 남편인 서씨의 관직은 대조, 중랑장 등을 지냈다고 되어있으나, 서씨 성을 가진 해당 관직을 가진 사람이 확인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부녀자로써 충실하게 집안일을 해서 가정을 보필했으며, 별다른 과실을 저지르지 않고 시댁이나 친정 쪽에서도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290년 5월 27일에 관낙이 사망하자 사위인 숭이 묘비를 세우고 그 행적을 기록한 것이며, 이는 사위가 장모님을 위해 묘지를 조성한 매우 드문 사례 중 하나이다.
사망했을 때 291년 2월 19일에 낙양의 서남쪽에 합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남편보다 늦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233 ~ 290)
서진 시기의 인물. 자는 승(勝).
사서 기록이 아닌 금석문 기록에서 나오는 여성으로 그녀의 묘비인 《관씨부인묘비(菅氏夫人墓碑)》즉《서군부인관씨지묘비(徐君夫人菅氏之墓碑)》가 1930년 하남성 낙양시에서 출토되었다.
대군 사람으로 효성이 독실한 집안 출신이고 251년에 서(徐)씨와 결혼했으며, 그의 남편인 서씨의 관직은 대조, 중랑장 등을 지냈다고 되어있으나, 서씨 성을 가진 해당 관직을 가진 사람이 확인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부녀자로써 충실하게 집안일을 해서 가정을 보필했으며, 별다른 과실을 저지르지 않고 시댁이나 친정 쪽에서도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290년 5월 27일에 관낙이 사망하자 사위인 숭이 묘비를 세우고 그 행적을 기록한 것이며, 이는 사위가 장모님을 위해 묘지를 조성한 매우 드문 사례 중 하나이다.
사망했을 때 291년 2월 19일에 낙양의 서남쪽에 합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남편보다 늦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