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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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자고등학교 Kyunggi Girls’ High School 京畿女子高等學校 | |
교 훈 |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워라 眞 · 善 · 美 |
분류 | |
개교 | |
교장 | 제26대 김영아 |
교감 | 전혜진 · 이성호 |
학생 수 | 43학급 1,517명 |
교직원 수 | 105명 |
성별 | |
교화 | |
교색 | |
주소 | |
관할교육청 | |
홈페이지 | |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 1910년 8월 1일에 종로구 재동으로 이전.
- 1911년 경운동으로 이전.
- 1911년 2월 28일 제1회 졸업생(31명) 배출
- 1911년 11월 1일 관립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약칭 경성여고보)로 개칭
- 1922년 4월 1일 경성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칭
- 1923년 재동으로 이전.
- 1938년 4월 1일 경기공립고등여학교로 개칭
- 1945년 10월 15일에 중구 정동으로 이전.
- 1947년 5월 1일 경기공립여자중학교로 개칭
- 1949년 2월 23일 학도호국단 결성
- 1950년 4월 1일 경기여자중학교 개칭
- 1951년 9월 1일 경기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로 개편
- 1969년 3월 1일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 실시
- 1971년 2월 28일 경기여자중학교 폐교(중학교 평준화 조치)
- 1972년 4월 1일 경운회 장학회 발족
- 1972년 4월 22일 노동조합 발족
- 1974년 3월 23일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
- 1986년 10월 15일 경기민속관 개관
- 2010년 10월 15일 개교 100주년 기념관 준공
- 2019년 2월 8일 제107회 졸업식(525명, 누계 43,672명)
- 2019년 3월 4일 제110회 신입생 374명 입학
1908년 4월 1일에 개교했으니, 개교한 지 118년이나 되었다. 진정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평준화 시대 초기의 경기여고.(1979년 11월 15일 KBS 방송)
고등학교 평준화 이전에는 여고 중에서 최고의 명문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여학생이라면 경기여중과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고.(남학생은 경기중학교-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일명 KS 마크라고도 했다.)
60년대 이후 정부의 여성교육 정책으로 전국에서 공부 잘 하는 여학생들이 모인 경기여고도 성적이 상승하여, 경기여고 상위권은 경기고에도 밀리지 않게 되었다.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1975년 예비고사 전국 수석은 경기여고 3학년이었다. 70학번부터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76학번 서울대 단과대 수석 130명 중 경기여고 출신이 4분의 1을 넘는 34명으로 1위였다(2위 경기고 21명).
서울대 다음은 이화여자대학교.[1] 심지어 경기여고-이화여대 라인은 통합 동창회까지 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인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배우 김혜자,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가 있다.[2] 현정은과 김혜자는 반드시 꼬박꼬박 참석한다고 한다. 보통 주최는 현정은 회장이 한다고. 지금은 거품이 많이 꺼지긴 했지만, 그래도 과거의 명성과 8학군 버프로 성적은 상당히 좋은 편.
강남구로 이전하기 전까지 있었던 중구 정동 부지는 주한 미대사관 경비전담 전경부대의 훈련장으로 쓰였으며, 앞으로의 부지 활용을 두고 논란이 매우 많았다. 1986년부터 경기여고가 이전한 후 주한미국대사관이 서울시로부터 구입해서 대사관 및 직원 숙소를 이전할 계획이었고, 건물 설계도 유명 건축가 마이크 그레이브스에게 맡긴 후 2001년 서울시가 건물신축 관련 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1999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후 덕수궁 선원전 터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됐고, 2002년 서울시가 건축허가를 신청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주한미대사관과 정동 등지에서 '신축 저지' 시위를 벌였다. 이에 놀란 서울시가 2003년부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표조사를 한 결과 이 곳이 옛 덕수궁 부지로 밝혀지면서 주한미국대사관과 문화재청이 협상을 벌여서 대사관 이전은 중단되고, 발굴 조사 후 지역을 개발하지 않고 보존하며 장기적으론 덕수궁 복원에 활용할 계획이다.[3]
3. 특징 [편집]
- 매년 8월 말, 2학기가 막 시작할 즈음에 학교축제(영매제)를 여는데, 1학년은 합창, 2학년은 세계 민속 무용대회를 준비한다.[10] 2016년에 처음으로 세계 민속 무용대회 우승반을 축제 둘쨋날 저녁 공연에 올렸으나 근처 남학교 학생들의 성희롱으로[11] 앞으로 다시는 세계 민속 무용대회 우승팀을 저녁공연에 올리지 않는다고 함. 이외에도 세계 민속 무용대회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준비기간이 여름인 점, 학교 수업시간 중 연습시간으로 활용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방과 후에 따로 모여야 하는 점[12], 에어컨 없는 강당에서 폭염에 전통복을 입고 춤 연습을 해야 하는 점 등이 학교 학생이라면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추억을 선물해 준다. 여름방학때 (빡세게 학원에서 공부를 해야하는 시기라서) 학업에 지장이 간다는 학생 및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아 최근부터는 여름방학동안 연습을 금지시켜 방학전후로 빡세게 연습해야한다. (그래도 우승을 위해 몰래 방학 때 연습하는 반이 존재하긴 한다)[13]
- 2017년 3학년 기준 문과 이과반 비율9:5로, 이과반이 주변 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15] 또 2017년 기준 이과에서 과학2과목이 모두 개설되었다.(약 물2 30명 화2 180명 생투 170명 지2 40명) 2과목은 물리 화학 중 하나 생물 지구과학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음.
- 2019년 3학년 기준 문과 10반 이과 4반이다.[16]
- 여학교 특성과 전통으로 문과가 강한 학교로, 교내 수시 준비를 위한 프로그램 대부분이 문과 중심으로 맞춰져 있다. 이과는 경시대회랑 탐구대회가 거의 전부. 이과생은 스스로 개척하거나 문과 스펙을 쌓거나 둘 중 하나다.
- 비평준화시절 졸업생들로 동창회 회원들의 라인업이 화려하다. "선배와의 대화"라고 금요일 창체 시간에 가끔 유명한 동문이 찾아와 강연한다.
여학교인 걸 알면서도 남자이길 기대한다. 그리고 실망한다.매학기마다 동창회에서 20명 내외의 성적우수자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기도 한다.그 외에도 돈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는데, 그 돈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잔디 깎는 데 쓰나. 요즘에는 예산이 많이 없다는 소식이 들려온다.1983년에는 2회~16회 졸업생[18]들이 한자리에 모인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교육계 인사를 상당히 많이 배출한 것으로 보인다.
4. 교훈 [편집]
교훈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워라' <1958년 원곡 김기승의 휘호, 1965년 화재 때 소실되었다.> http://www.kgg.hs.kr/crosseditor.jsp/binary/images/000187/MDEwMl8wMDU=.gif
교훈 '眞善美' <1968년 서예가 동강의 휘호> http://www.kgg.hs.kr/crosseditor.jsp/binary/images/000187/MDEwMl8wMDY=.gif
교훈 '眞善美' <1968년 서예가 동강의 휘호> http://www.kgg.hs.kr/crosseditor.jsp/binary/images/000187/MDEwMl8wMDY=.gif
5. 우리 학교를 소개합니다 [편집]
<우리 학교를 소개합니다> 10편에 출연하였다.
6. 출신 인물 [편집]
- 강신재 - 소설가
- 강인숙 - 문학가. 이어령의 부인.
- 고황경 - 서울여자대학교 설립자, 초대 총장.
- 김정연 - 트로트 가수
- 김지영(1974) - 배우
- 류현경 - 배우
- 박선영(1976) - 배우
- 박인숙 - 의사, 정치인.
- 이지현 - 배우
- 이해경 - 의친왕의 5녀
- 전수안 - 전 대법관. 한국 2번째 여성 대법관
- 정미홍 - 정치인, 前 KBS 아나운서.
- 정현옥(공무원) - 전 고용노동부 차관
- 조시윤 - 가수, 前 '퓨리티' 멤버
- 조현숙 - 정치인 고건의 부인
- 한인옥 - 정치인 이회창의 부인
- 홍미영 - 빈민운동가, 사회운동가,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 황산성 - 변호사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편집]
7.1. 지하철 [편집]
7.2. 버스 [편집]
8. 둘러보기 [편집]
[1] 이화여자대학교 합격자는 경기여자고등학교보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출신이 많았다.[2] 다만 이순자와 김혜자는, 이대 재학 중에 결혼하여, 당시의 금혼 학칙 때문에 자퇴했다.[3] 이에 따라 주한미국대사관은 2005년 용산구 남영동의 주한미군 캠프 코이너 부지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었으며, 미 대사관과 주한미군은 2018년 1월부터 대사관 이전 공사 준비에 착수했다.[4] ‘경기여고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고교평준화 이전 경기여고로 기억하시는 분들은 ‘어이구 우리나라 최고의 고등학교 아니여!!’ 라며 칭찬해주시곤 한다.[5] 동창회인 경운회의 입김이 쎄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칙이 많이 풀려 자유롭게 등교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6] 등교 시간에 경기여고 앞을 지나다니다 보면, 걸어가며 치마를 입는 학생들을 구경할 수 있다. 혹은 치마 안에 입은 체육복이나 트레이닝복을 무릎위까지 안보이게 끌어올려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들도 볼 수 있다.[7] 일부 3학년은 선생님 출근 전 등교해서, 아예 처음부터 교복을 들고 오지조차 않는다. 오히려 3학년때는 교복을 올바르게 입고 학교내에 돌아다니다 친한쌤을 만나면 ’왜 교복입고있니?’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8] 심지어 1학년 때는 하교 후 놀기위해 하교할 때만 화장하고 가도 특정 몇몇 쌤들이랑 운나쁘게 마주치면 잔소리를 듣는다. [9] DSD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2학년 교육과정에서 독일어를 선택해야하는데, 여러모로 내신에 불이익이다. 수강자 수가 매우 적기 때문.[10] 그래서 여름방학에 경기여고를 방문하면, 이상한 옷을 입고 춤추거나 노래하며 율동하는 여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11] 당시 우승반은 밸리댄스 의상을 입고 있었음[12] 모든 팀플이 그렇듯, 방과 후 연습에 비협조적인 학생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결석비와 지각비로 영매제가 끝나면 모든 반에 많은 돈이 모인다. 지각비는 돈과 관련된 문제라 종종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영매제 끝나면 중간고사라 바로 쓸 수 없는 게 현실[13] 경기여고 학생 대부분이 "가장 기억나는 학교 생활을 서술하라"는 질문에 영매제 민속무용제를 답하곤 한다. 쌤들은 자소서에 쓸 내용이 생겨서 좋은거 아니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신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 [14] 1학년은 매우 어려우나, 2학년부터는 지문 수가 50-100개로 많아지면서 절대적 난이도는 떨어진다. 물론 그 정도 양의 지문을 다 봐야 한다.[15] 이과는 200명 내외로 1등급이 8명이다[16] 이과는 100명 조금 넘으며 2019년 기준 3학년때 과학2과목은 물리 생명 중 하나 화학 지학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있다.[17] 이 야산에서 바바리맨이 체포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석식먹던 학생들 중 적지않은 수가 바바리맨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바리맨을 구경하러 석식 내팽겨치고 야산으로 뛰어갔다.[18] 다시 말해 1912~1926년 졸업생들이다! 기사의 언급에 따르면 1회 졸업생도 1983년 당시에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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