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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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02년 경상남도 언양군 상북면(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3]#에서 아버지 오익선(吳益善)과 어머니 함안 조씨 조장화(趙璋和)의 딸 사이의 6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산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가서, 1928년 일본 고베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귀국하였다. 이후 조선신탁은행장을 지내는 등 금융인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수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어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1년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장면을 국무총리로 추천하였다. 1954년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에 반대하여 자유당을 탈당하여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려 하였으나 등록이 취소되었다.
이후 민주당 창당에 참여 신파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당 내에서 치러진 원내총무 선출 경선에서 구파의 김의택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1960년 제2공화국이 출범할 때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의원(경상남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행정안전부의 전신에 해당되는 국무원사무처장(이후 총무처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1년 무임소장관에 임명되었다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건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9년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 베르나데트가 그의 막내딸,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베드로 주교가 그의 외손자이다.
제2공화국(드라마)에서는 최병학이 연기했다.[4] 여기서는 민주당 신파의 막후실세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수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어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1년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장면을 국무총리로 추천하였다. 1954년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에 반대하여 자유당을 탈당하여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려 하였으나 등록이 취소되었다.
이후 민주당 창당에 참여 신파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당 내에서 치러진 원내총무 선출 경선에서 구파의 김의택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1960년 제2공화국이 출범할 때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의원(경상남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행정안전부의 전신에 해당되는 국무원사무처장(이후 총무처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1년 무임소장관에 임명되었다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건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9년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 베르나데트가 그의 막내딸,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베드로 주교가 그의 외손자이다.
제2공화국(드라마)에서는 최병학이 연기했다.[4] 여기서는 민주당 신파의 막후실세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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