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심은 1919년 4월 1일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읍 서문 밖에서 3.1 운동에 가담하여 2천 명의 주민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후 1921년 2월 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독립단원의 군자금 모집 활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직후 경찰에게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강제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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