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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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우남호(HL2002).[1] 현재 인하대학교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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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3-277B 콕핏
1. 개요 [편집]
2. 개발 [편집]
첫 시작은 1930년대 초반, TWA의 빡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당시 TWA는 유나이티드 항공과 불꽃튀는 경쟁중이었는데 유나이티드 항공은 같은 계열사였던 보잉[2]의 당대 최신 여객기인 보잉 247을 주문하게 되었다.[3]
그 시절 항공사들은 특정 항공기 제작업체를 선호하여 해당 업체 제품들만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고 항공기 제작업체 역시 자신들을 선호하는 항공사들에게 우대정책을 펴는 상황이었다.[4] 이러한 상황속에 유나이티드 항공은 보잉의 신형 여객기를 도입했고 보잉은 계열사였던 유나이티드 항공이 주문한 60기의 기체를 납품하기 전까지는 타 항공사들에게 247를 팔지 않는다고 선언해버린다(...).배짱 장사 클라스
이에 빡돈 TWA는 더글라스에게 유나이티드 항공과 맞붙을 수 있는 신형 여객기를 주문하는데 이에 대한 더글라스의 응답은 바로 1933년에 출시한 DC-1이었다. TWA의 하워드 휴즈와 기술 자문인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가 이전에 엔진 하나가 고장나 TWA 비행기가 떨어져 전원 사망한 사건 때문에 엔진 하나가 고장나도 날 수 있는 3발기를 요구했는데 더글라스는 쌍발기로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며 내놓은 DC-1이 엔진 하나로 못 날자 당장 단종시키고(…) 재설계에 들어가 1934년에는 개량형 DC-2를 선보이면서 TWA를 만족시켰다.
한편 아메리칸 항공의 CEO였던 C. R. 스미스 회장은 자사의 커티스 T-32 콘도르 복엽 여객기를 대체할 신형 여객기를 더글라스에 주문하게 된다. 이에 더글라스는 DC-2 기반의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야간노선을 위한 침대 여객기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DST(Douglas Sleeper Transport)라고 불렀다. 이후 1935년 12월 17일,[5] DST 프로토타입이 초도비행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다.
그 시절 항공사들은 특정 항공기 제작업체를 선호하여 해당 업체 제품들만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고 항공기 제작업체 역시 자신들을 선호하는 항공사들에게 우대정책을 펴는 상황이었다.[4] 이러한 상황속에 유나이티드 항공은 보잉의 신형 여객기를 도입했고 보잉은 계열사였던 유나이티드 항공이 주문한 60기의 기체를 납품하기 전까지는 타 항공사들에게 247를 팔지 않는다고 선언해버린다(...).
이에 빡돈 TWA는 더글라스에게 유나이티드 항공과 맞붙을 수 있는 신형 여객기를 주문하는데 이에 대한 더글라스의 응답은 바로 1933년에 출시한 DC-1이었다. TWA의 하워드 휴즈와 기술 자문인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가 이전에 엔진 하나가 고장나 TWA 비행기가 떨어져 전원 사망한 사건 때문에 엔진 하나가 고장나도 날 수 있는 3발기를 요구했는데 더글라스는 쌍발기로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며 내놓은 DC-1이 엔진 하나로 못 날자 당장 단종시키고(…) 재설계에 들어가 1934년에는 개량형 DC-2를 선보이면서 TWA를 만족시켰다.
한편 아메리칸 항공의 CEO였던 C. R. 스미스 회장은 자사의 커티스 T-32 콘도르 복엽 여객기를 대체할 신형 여객기를 더글라스에 주문하게 된다. 이에 더글라스는 DC-2 기반의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야간노선을 위한 침대 여객기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DST(Douglas Sleeper Transport)라고 불렀다. 이후 1935년 12월 17일,[5] DST 프로토타입이 초도비행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다.
3. 활약 [편집]
1936년부터 1942년, 그리고 1950년까지 총 607대가 생산되었다. 인지도에 비해 생산댓수가 적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군용 버전을 포함시키지 않아서 그런 것. 군용 버전인 C-47 스카이트레인까지 포함시키면 1만대 넘게 생산되었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c-47%B0%FA%20c-17.jpg
증손자뻘 되는 녀석과 함께 비행 중...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c-47%B0%FA%20c-17.jpg
증손자뻘 되는 녀석과 함께 비행 중...
4. 파생형 [편집]
- 생산말기에 슈퍼 DC-3(DC-3S)라는 엔진강화 및 동체연장(1m) 버전이 있었으나 민간 판매는 신통치 않아 겨우 5대 팔았다.
- 소련에서는 Лизунов ЛИ-2(Lisunov Li-2, 나토코드 Cab)라는 이름으로 4,937대를 1939년부터 1950년까지 라이센스 생산하여 군용으로 투입하였던 이력이 있다고 한다.
- 미쯔비시의 킨세이 엔진을 단 DC-3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쇼와와 나카지마에서 Showa/Nakajima L2D 이름을 달고 라이센스 생산[6] 형식으로 487대가 생산되었다.
- 위스콘신 오시코시에 위치한 Basler사에서 동체연장, 항전장비 추가,터보프롭으로 엔진 교체 등의 개조를 통해 DC-3를 현대화된 BT-67로 탈바꿈시켜준다. Basler 사는 오직 이런 DC-3 개조만 하는 회사이다.
5. 현재 [편집]
6. 운용사 [편집]
7. 관련 항목 [편집]
8. 참고 링크 [편집]
[1] 1954년 도입 후 대한민국 최초로 태평양을 비행한 민항기. 우남은 이승만대통령의 호이다.[2] 노스롭과 프랫&휘트니도 같은 계열사였다.[3] 하지만 보잉 247은 유나이티드가 주문한 물량을 빼고는 거의 주문량이 없어서 실패했다. 안습.[4] 이 경향은 훗날 보잉 707과 DC-8 제작 시절까지 이어진다.[5] 공교롭게도 라이트형제가 비행한지 딱 32년후다.[6] 더글라스와 2차세계대전 이전인 1935년 $90,000에 맺어진 라이센스로 DC-2의 라이센스 생산의 성공으로 맺어졌다.[7] 항공 법규가 까다로운 북미에서도 정기운항편서에 잘 날아다닌다.[8] 1926년 창립된 미국의 17개 레거시 케리어 중 하나로, 1970년대까지 빅4였으나 1991년 파산.[9] 1936년 도입 후 암스테르담-자카르타 경유-시드니 운항.[10] 전신인 KNA 등에서 운용했으며 이 문서 최상단에 있는 우남호 외 3기를 운용했다. 그 중 한 기인 창랑호는 납북되었고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나머지 한 기인 만송호는 착륙 중에 사고가 나 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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