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종(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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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희종(熙宗) | |
총민영과돈활관유위도휘공장황제 (聰敏英果敦闊寬裕偉度徽恭章皇帝) | |
레(Lê, 黎/여) | |
주이 깝(Duy Cáp, 維祫/유협) | |
생몰기간 | 1663년 ~ 1716년 |
재위기간 | 1675년 ~ 1705년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663년, 신종의 4남으로 태어났으나, 신종의 유복자였다.
1675년, 형 가종이 후사없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여유협은 황제로 즉위하였다.
1677년, 찐씨 정권의 왕 정작이 정문좌(丁文左) 등을 앞세워서 고평(高平) 지역만 통치하는 막 왕조를 공격하였고, 승리하여 막 왕조의 황제 막경우는 청나라로 도망갔다.
1678년, 조선의 제주도 군영소속 관리였던, 김태황(金泰璜)이 호이안(회안부)에 표류하였고, 6개월 동안 머물게 하다가, 청나라 상선에 맡겨 조선으로 돌려보냈는데, 조선에 답신을 기대하며 교류국서를 딸려보냈다.
1705년, 희종은 제위를 황태자인 여유당(黎維禟, 유종)에게 양위하고서 태상황이 되었다.
1716년, 희종은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호는 희종(熙宗), 시호를 장황제(章皇帝)로 추존되었다. 능호는 부릉(富陵)이다.
1675년, 형 가종이 후사없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여유협은 황제로 즉위하였다.
1677년, 찐씨 정권의 왕 정작이 정문좌(丁文左) 등을 앞세워서 고평(高平) 지역만 통치하는 막 왕조를 공격하였고, 승리하여 막 왕조의 황제 막경우는 청나라로 도망갔다.
1678년, 조선의 제주도 군영소속 관리였던, 김태황(金泰璜)이 호이안(회안부)에 표류하였고, 6개월 동안 머물게 하다가, 청나라 상선에 맡겨 조선으로 돌려보냈는데, 조선에 답신을 기대하며 교류국서를 딸려보냈다.
1705년, 희종은 제위를 황태자인 여유당(黎維禟, 유종)에게 양위하고서 태상황이 되었다.
1716년, 희종은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호는 희종(熙宗), 시호를 장황제(章皇帝)로 추존되었다. 능호는 부릉(富陵)이다.
3. 가계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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