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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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Black Panther Party
미국의 실존했던 정당[1]이자 무장단체이다. "흑인의 강인함과 존엄을 표현하기에는 검은 표범이 가장 알맞다"는 주장 아래 조직되었으며 1960~70년대 히피열풍과 反문화적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흑백차별금지, 흑백평등 등을 추구하며 사회운동을 조직하고 동시에 공권력 남용에 대항한 무장방어를 추구하였다. 맬컴 엑스의 급진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마오이즘, 안티 파시즘, 반제국주의도 주장하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버클리 등지에서 시위가 잦은 와중에 그 지역 경찰들로 남부 출신자들(KKK의 잔당들)을 특채로 대거 뽑아버리자 이에 자극을 받아 창당됐다고도 한다.
미국의 실존했던 정당[1]이자 무장단체이다. "흑인의 강인함과 존엄을 표현하기에는 검은 표범이 가장 알맞다"는 주장 아래 조직되었으며 1960~70년대 히피열풍과 反문화적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흑백차별금지, 흑백평등 등을 추구하며 사회운동을 조직하고 동시에 공권력 남용에 대항한 무장방어를 추구하였다. 맬컴 엑스의 급진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마오이즘, 안티 파시즘, 반제국주의도 주장하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버클리 등지에서 시위가 잦은 와중에 그 지역 경찰들로 남부 출신자들(KKK의 잔당들)을 특채로 대거 뽑아버리자 이에 자극을 받아 창당됐다고도 한다.
2. 역사 [편집]
흑표당의 창립자는 바비 실과 휴이 뉴턴으로,[2]1966년 10월 15일 캘리포니아 주의 오클랜드에서 흑표당을 세웠다. 당의 지도부 중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마오주의에 가까웠다#1 #2. 마오쩌둥 어록에 나온 마오쩌둥의 혁명 조언에 영감을 받은 휴이 뉴턴은 '생존주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름은 매우 거창하지만 생존주의 프로그램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어린이들을 위해 공짜 아침식사를 제공해주는 것과 어린이들이 등하교 버스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할까봐 운영한 것이다.
다른 생존주의 프로그램들은 의류 분배, 정치와 경제의 계급, 무료 의료업, 자신방어와 응급 치료에 관한 수업, 피수용자들의 가족들을 위한 지방 교도소 등을 포함한다. 또 1971년 흑인 청소년들을 위해 교육 기관 "상호 청소년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히피운동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쇠퇴하였다. 공식적으로 1982년 해체하였다. 안그래도 1960년대의 각종 반전 시위, 신좌파의 부상 등에 골머리를 싸매던 당국 입장에서는 감히 깜둥이가 총들고 자기 밥그릇 챙기겠다고 개기는 행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집중 탄압하기 시작했고 FBI의 첩보 프로그램인 COINTELPRO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COINTELPRO의 주요 활동 내역에는 정치 집단에 밀고자를 심고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켜 내부 균열을 유도하거나, 목표 집단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가짜 과격 단체를 만들어 대중들의 지지도를 낮추기 등이 있으며, 경찰력을 이용한 비합법적인 체포와 사살, 암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탄압 과정의 백미는 시카고 흑표당의 주동자 중 하나였던 프레드 햄프튼과 그 동지들을 FBI가 직접 나서서 시카고의 그의 집에서 쏴 죽인 사건이었다.
일리노이주 주 지부장이었던 프레드 햄프턴은 시카고 갱들을 중재하여 갱 전쟁을 막고, 경찰들의 불법 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였다. 무료 급식과 시민 교육을 제공하였으며, 흑인 사회 뿐만 아니라 라틴계, 아시아계, 아메리카 원주민 등 약자 계층과 소수 인종에게 힘을 실어주고, 인종과 상관없이 연대할 수 있도록 무지개 연합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는 흑표당 내부는 물론, 지역사회의 지지를 받는 리더로 떠올랐다.
FBI는 밀고자를 통해 프레드 햄프튼의 거처를 알아내고 불법 무기 수색을 빌미로 이들을 죽였는데 사건에서 발생한 90회 이상의 총격 중 단 한발만이 경관들을 향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이 작전의 주 책임자였던 FBI 그레그 요크 요원의 말을 들어 보자.
다른 생존주의 프로그램들은 의류 분배, 정치와 경제의 계급, 무료 의료업, 자신방어와 응급 치료에 관한 수업, 피수용자들의 가족들을 위한 지방 교도소 등을 포함한다. 또 1971년 흑인 청소년들을 위해 교육 기관 "상호 청소년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히피운동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쇠퇴하였다. 공식적으로 1982년 해체하였다. 안그래도 1960년대의 각종 반전 시위, 신좌파의 부상 등에 골머리를 싸매던 당국 입장에서는 감히 깜둥이가 총들고 자기 밥그릇 챙기겠다고 개기는 행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집중 탄압하기 시작했고 FBI의 첩보 프로그램인 COINTELPRO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COINTELPRO의 주요 활동 내역에는 정치 집단에 밀고자를 심고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켜 내부 균열을 유도하거나, 목표 집단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가짜 과격 단체를 만들어 대중들의 지지도를 낮추기 등이 있으며, 경찰력을 이용한 비합법적인 체포와 사살, 암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탄압 과정의 백미는 시카고 흑표당의 주동자 중 하나였던 프레드 햄프튼과 그 동지들을 FBI가 직접 나서서 시카고의 그의 집에서 쏴 죽인 사건이었다.
일리노이주 주 지부장이었던 프레드 햄프턴은 시카고 갱들을 중재하여 갱 전쟁을 막고, 경찰들의 불법 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였다. 무료 급식과 시민 교육을 제공하였으며, 흑인 사회 뿐만 아니라 라틴계, 아시아계, 아메리카 원주민 등 약자 계층과 소수 인종에게 힘을 실어주고, 인종과 상관없이 연대할 수 있도록 무지개 연합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는 흑표당 내부는 물론, 지역사회의 지지를 받는 리더로 떠올랐다.
FBI는 밀고자를 통해 프레드 햄프튼의 거처를 알아내고 불법 무기 수색을 빌미로 이들을 죽였는데 사건에서 발생한 90회 이상의 총격 중 단 한발만이 경관들을 향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이 작전의 주 책임자였던 FBI 그레그 요크 요원의 말을 들어 보자.
"We expected about twenty Panthers to be in the apartment when the police raided the place. Only two of those black niggers were killed, Fred Hampton and Mark Clark."
"우리는 그 아파트에 흑표당원이 스무명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하고 쳐 들어갔는데, 프레드 햄프튼과 마크 클라크 두 깜둥이만 사살했다."
쇠퇴 이후에도 진보적 성격의 NGO들이 이들이 제기했던 일부 의제들을 계승해서 도시빈민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검은색 베레모와 총기가 상징이다. 총기 같은 경우는 사실 시위현장[3]이나 흑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등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습격할까봐 무장경호를 한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총기를 들고 무장투쟁을 중시한 것 때문에 나중에 흑표당의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아 흑인 스트리트 갱스터 (Street Gangster)들이 창건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크립스나 black p. stone 등이 있으며 블랙 게릴라 패밀리 같은 교도소 갱단들도 흑표당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일:black-panthers-in-north-korea-675x368.jpg
주체사상에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한다.#1 #2 흑표당의 정보국장 엘드리지 클레버는 1969년 평양의 반제국주의 기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당시의 주체사상은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수준이었고, 주체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받아들였다.
신흑표당(New Black Panther Party)이 존재하지만 이는 말콤 X가 활동하다 결별한 흑인우월주의 종교집단인 이슬람의 국가(네이션 오브 이슬람, The Nation of Islam)[4]내에서 방출된 이들이 만든 것으로, 본래 흑표당과 이념적으로나 인적 구성이 전혀 다른 극단주의 세력이다.
3. 기타 [편집]
-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흑표당에 가입하거나 연대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리처드 아오키가 있다. 리처드 아오키는 흑표당 초기에 가입하여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간부가 되었다.[5] 이후 흑표당의 창립자 두 명 중 한 명인 휴이 뉴튼이 체포되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석방 시위에 참여했다. 자세한 내용은 Yellow Peril Supports Black Power 참조.
-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등장한다. 파월병사인 검프를 당연히 아니꼽게 보고 검프에게 공격적인 발언을 해대며, 바비 실을 모델로 한 캐릭터도 등장한다.
- 게임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도 언급되며 다이애나 로스를 오마쥬한 아프로 흑인 여성 '그레이스 워커'도 흑표당 출신이다. 현실보다 일찍 몰락한 인게임 시점에서는 크라이사우 서클 소속이 되었지만.
- 2021년에 개봉한 영화 《유다 앤 더 블랙 메시아》에서 위에서 언급된 흑표당 리더 프레드 햄튼의 암살 과정을 그린다.[9]
[1] 극좌파로 분류됨[2] 애니메이션 분덕스의 메인캐릭터인 휴이 프리먼의 모티브이기도 하다.[3] 당시 시위진압 방식은 잔혹하기 그지 없었다. 곤봉으로 찍어버리는 것은 예사이고 개들을 풀어서 시위대를 물어 뜯게 하는 일도 흔했다...[4]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는 전혀 다르다. 다만 흑인우월주의 단체긴 하다.[5] 그러나 2012년에 FBI의 정보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6] Black Communist Rebel. 줄여서 BCR.[7] 정황상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일 확률이 크다. 참고로 시즌 4에서 일본 제국은 이 아시아 저항군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데, 무려 한반도까지 저항군이 진출했다.[8] 저항군 거점에는 칼 마르크스 등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저서들이 가득하다. 승전한 나치와 일제가 죄다 불태워버렸지만 근성으로 다시 찍어냈다고.[9] 주연으로 등장하는 프레드 햄튼 역의 대니얼 칼루야와 윌리엄 오닐 역의 러키스 스탠필드는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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