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종(금)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금 추존 황제 徽宗 | 휘종 | ||
휘종(徽宗) | ||
윤공극양효덕현공우성경선황제 (允恭克讓孝德玄功佑聖景宣皇帝) | ||
여진어 | 왕기얀(Wanggiyan) | |
중국어 | 완안(完顔) | |
여진어 | 승과(繩果) | |
중국어 | 종준(宗峻) | |
생몰 기간 | ???년 ~ 1124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3. 황제 추존 [편집]
제2대 황제였던 태종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제위를 물려주려다가 여진족 부족장들의 반발로 실패하여, 1132년에 태조의 적장손이자 완안승과의 아들인 완안합라를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1135년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완안합라가 금나라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가 제3대 황제인 희종이다. 희종은 생부인 완안승과에게 휘종(徽宗)이라는 묘호를 올리고, 경선황제(景宣皇帝)라는 시호를 올렸다가 이후 윤공극양효덕현공우성경선황제(允恭克讓孝德玄功佑聖景宣皇帝)로 시호를 고쳤다.
1150년에 완안적고내가 희종을 시해하고 즉위하였는데 이가 금나라의 제4대 황제가 되는 해릉양왕이다. 해릉양왕은 희종을 동혼왕(東昏王)으로 강등시키며 완안승과도 풍왕(豐王)으로 강등시켰고 묘호와 시호를 모두 삭탈하였다. 이후 1161년에 해릉양왕이 폐위되었고 완안옹이 추대를 받아 즉위하니, 이가 금나라의 제5대 황제인 세종이다. 세종은 희종과 완안승과의 묘호와 시호를 복위시켜, 완안승과는 다시 묘호와 시호를 받았다.
1150년에 완안적고내가 희종을 시해하고 즉위하였는데 이가 금나라의 제4대 황제가 되는 해릉양왕이다. 해릉양왕은 희종을 동혼왕(東昏王)으로 강등시키며 완안승과도 풍왕(豐王)으로 강등시켰고 묘호와 시호를 모두 삭탈하였다. 이후 1161년에 해릉양왕이 폐위되었고 완안옹이 추대를 받아 즉위하니, 이가 금나라의 제5대 황제인 세종이다. 세종은 희종과 완안승과의 묘호와 시호를 복위시켜, 완안승과는 다시 묘호와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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