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한자어 [편집]
1.1. 後門 [편집]
1.2. 後聞 [편집]
어떤 일에 관한 뒷얘기로 에피소드와 비슷한 말.
2. 후한 말의 인물 [편집]
侯汶
생몰년도 미상. 자는 문림(文林).
태원군 중도현 사람으로 종구의 문하생을 지냈고 종구를 기리는 한사공종구비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며, 헌제 때 시어사를 지내 194년 4월부터 7월까지 삼보 지역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헌제가 조회를 열지 않고 비 내리기를 청하면서 사자를 보내 죄수들을 사면했다.
이 때 곡식 1곡의 가격은 50만전, 콩, 보리 1곡의 가격은 20만전에 달할 정도로 비싸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어 백골이 쌓일 정도에 이르렀는데, 후문은 명을 받아 태창의 쌀, 콩을 내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죽이나 미음을 만들었지만 하루가 지나도 굶어죽는 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이로 인해 헌제가 구휼하는 것에 농간이 있는 것으로 의심해 친히 죽을 만드는 것을 시험한 후에 충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했는데, 헌제가 유애를 보내 담당 관리를 꾸짖게 하자 상서령 이하의 모든 관원들이 사죄했다. 후문은 관원들에게 붙잡히고 그들이 실태를 조사하도록 주청했다가 후문은 장형 50대의 벌을 받았고 이후에는 많은 이들이 구제되었다고 한다.
생몰년도 미상. 자는 문림(文林).
태원군 중도현 사람으로 종구의 문하생을 지냈고 종구를 기리는 한사공종구비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며, 헌제 때 시어사를 지내 194년 4월부터 7월까지 삼보 지역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헌제가 조회를 열지 않고 비 내리기를 청하면서 사자를 보내 죄수들을 사면했다.
이 때 곡식 1곡의 가격은 50만전, 콩, 보리 1곡의 가격은 20만전에 달할 정도로 비싸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어 백골이 쌓일 정도에 이르렀는데, 후문은 명을 받아 태창의 쌀, 콩을 내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죽이나 미음을 만들었지만 하루가 지나도 굶어죽는 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이로 인해 헌제가 구휼하는 것에 농간이 있는 것으로 의심해 친히 죽을 만드는 것을 시험한 후에 충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했는데, 헌제가 유애를 보내 담당 관리를 꾸짖게 하자 상서령 이하의 모든 관원들이 사죄했다. 후문은 관원들에게 붙잡히고 그들이 실태를 조사하도록 주청했다가 후문은 장형 50대의 벌을 받았고 이후에는 많은 이들이 구제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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