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공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조선 중종의 왕녀 효순공주 | 孝順公主 | ||
이름 | 옥련(玉蓮)[1] | |
출생 | ||
사망 | ||
부왕 | ||
모후 | ||
부군 | ||
자녀 | 친자 없음 (양자) 구홍(具宖) | |
묘소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533년(중종 28) 11세의 나이로 동갑이었던 감찰 구순의 아들 구사안을 부마로 맞이하였다. 구사안은 영응대군의 사위였으며, 중종반정을 도운 정국공신 구수영의 증손자였다. 또한, 구사안의 어머니 전주 이씨는 의신군 이징원의 딸이었는데, 모계 쪽으로 효령대군의 후손이었던 점 또한 부마 간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4]
이 때문인지 공주의 집을 지을 때 효령대군 옛 집의 목재와 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중종은 사용할 수 있는 목재와 돌은 사용하라고 승낙한 일이 있다.[5]
1538년(중종 33) 공주는 17세의 나이에 난산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부마는 재혼할 수 없고, 첩을 둘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효순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구사안은 첩을 두고 3남 2녀의 자식을 보았다. 이로 인하여 구사안은 부마의 직첩을 빼앗겼다.
이 때문인지 공주의 집을 지을 때 효령대군 옛 집의 목재와 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중종은 사용할 수 있는 목재와 돌은 사용하라고 승낙한 일이 있다.[5]
1538년(중종 33) 공주는 17세의 나이에 난산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부마는 재혼할 수 없고, 첩을 둘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효순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구사안은 첩을 두고 3남 2녀의 자식을 보았다. 이로 인하여 구사안은 부마의 직첩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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