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북위 제9대 황제 肅宗 孝明皇帝 | 숙종 효명황제 | |
숙종(肅宗) | |
효명황제(孝明皇帝) | |
희평(熙平, 516년 ~ 518년) 신귀(神龜, 518년 ~ 520년) 정광(正光, 520년 ~ 525년) 효창(孝昌, 525년 ~ 528년) 무태(武泰, 528년) | |
생몰 기간 | 510년 ~ 528년 (18세) |
재위 기간 | 북위의 황제 |
515년 ~ 528년 (13년) | |
능호 | 정릉(定陵) |
1. 개요 [편집]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의 제9대 황제. 묘호는 숙종(肅宗), 시호는 효명제(孝明帝). 휘는 원후(元珝).
2. 상세 [편집]
선무제의 차남으로 510년에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선무영황후 호씨.
호씨는 자귀모사 제도에 따라 장남을 낳고 일찍이 살해당해야 했으나 효문제의 유언에 따라 살 수 있었던 북위 첫 번째 임금의 생모이기도 하다. 이후 호씨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을 펼쳤으며 이 시기의 권세로 오늘날 영태후 혹은 호태후로 불리게 된다.
한편 대대로 누적된 한화 정책의 피로와 남편에 이어 불교에 심취해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영태후에 의해 육진의 선비족 군벌들의 불만이 쌓여갔고 급기야 낙양으로의 수도 이전으로 원래의 수도였던 평성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육진의 세가 기울자 523년 이들의 불만은 기어이 폭발하여 군사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이 바로 육진의 난이다.
이때 토벌에 앞장섰던 이주영 등 이주씨 혈족들과 그의 부하들이었던 고환, 우문태 등이 이끄는 군벌이 급성장하였다.
육진의 난이 진압되자 이제 영태후의 전횡을 막기 위해 효명제는 암살을 기도하고 이주영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으나, 이를 알아챈 영태후는 선수쳐서 효명제를 독살했다.
능호는 정릉(定陵)이다.
호씨는 자귀모사 제도에 따라 장남을 낳고 일찍이 살해당해야 했으나 효문제의 유언에 따라 살 수 있었던 북위 첫 번째 임금의 생모이기도 하다. 이후 호씨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을 펼쳤으며 이 시기의 권세로 오늘날 영태후 혹은 호태후로 불리게 된다.
한편 대대로 누적된 한화 정책의 피로와 남편에 이어 불교에 심취해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영태후에 의해 육진의 선비족 군벌들의 불만이 쌓여갔고 급기야 낙양으로의 수도 이전으로 원래의 수도였던 평성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육진의 세가 기울자 523년 이들의 불만은 기어이 폭발하여 군사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이 바로 육진의 난이다.
이때 토벌에 앞장섰던 이주영 등 이주씨 혈족들과 그의 부하들이었던 고환, 우문태 등이 이끄는 군벌이 급성장하였다.
육진의 난이 진압되자 이제 영태후의 전횡을 막기 위해 효명제는 암살을 기도하고 이주영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으나, 이를 알아챈 영태후는 선수쳐서 효명제를 독살했다.
능호는 정릉(定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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