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경상도 영해도호부 서면 신리동
(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사망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황부칠은 1881년 7월 14일 경상도 영해도호부 서면 신리동(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 구장 이현우(李鉉祐)로부터 참여 권유를 받고 시위대열에 가담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오후 4시경 창수 경찰주재소에 이르렀는데, 이때의 시위군중은 4백여명으로 늘어났다.

군중은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서류를 파기한 후 객사 및 주임순사 타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소유물,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하였다. 또한 장총 3정과 대검 2개를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의류·식기까지도 완전히 파기하고,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그후 그는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 방해·건조물 손괴·기물 손괴·공문서 훼기·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3년 11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황부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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