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효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본관 | |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홍효선은 1879년 9월 9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6일 송산면사무소 앞에 모인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내걸고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28일에는 송산면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과 면서기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
3월 28일 오후 3시경, 뒤따라온 일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가 홍면 등을 강제로 연행하려 하자 시위군중은 일본경찰과 충돌하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순사부장이 권총으로 홍면을 쓰러뜨리고 주재소 방향으로 도망가자, 2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추격하여 살해하였다.
국가보훈처 공적조서에 따르면, 홍효선은 이후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다 얼마 안 가 옥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기록에 따르면, 홍효선은 1932년 12월 13일 수원군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홍효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월 28일 오후 3시경, 뒤따라온 일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가 홍면 등을 강제로 연행하려 하자 시위군중은 일본경찰과 충돌하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순사부장이 권총으로 홍면을 쓰러뜨리고 주재소 방향으로 도망가자, 2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추격하여 살해하였다.
국가보훈처 공적조서에 따르면, 홍효선은 이후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다 얼마 안 가 옥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기록에 따르면, 홍효선은 1932년 12월 13일 수원군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홍효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토홍계 27세 선(善) 현(顯)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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