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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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濟川 / Hongjecheon

목차
1. 개요2. 유래3. 이명과 지명4. 개발
4.1. 옛 홍제천의 흔적
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서울특별시 종로구-서대문구-마포구를 거쳐 성산대교 북단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2. 유래 [편집]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이 묵어 가던 홍제원(弘濟院)이 있던 점에서 유래한다. [1][2]

3. 이명과 지명 [편집]

모래가 많은 하천이라고 해서 모래내 혹은 이를 한자로 바꾼 사천(沙川)으로 불린다.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모래내시장과 이 하천을 건너가는 수색로상의 교량 명칭인 사천교에 이 명칭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하천을 통과하는 행정구역은 북가좌동남가좌동으로, 가좌라는 이름은 가재울이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가재울은 가재가 많이 잡히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뜻으로, 당연히 가재가 많이 잡히는 곳은 이 홍제천을 말한다.

한편으로는 위의 유래에서 홍제원천, 상류 근처에 세검정이 있다는 점에서 세검천이라고도 불린다..

4. 개발 [편집]

일제강점기 당시 직강화공사를 한 적이 있다. 기존의 성산1동과 망원동으로 굽이굽이 지나던 홍제천을 성산과 새터산 사이를 통과하도록 하였다. 직강화된 홍제천은 성산1동과 성산2동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뚝방길로 현재의 모래내길과 성산로가 탄생한다.

1995년에는 내부순환로가 홍제천을 따라 개통하였다.

4.1. 옛 홍제천의 흔적 [편집]

(아래 내용은 옛 미군정기 지도와 도보탐사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사료가 있는 경우 수정해주십시오.)

사천교에서 옛 홍제천의 북쪽 경계는 월드컵북로12길-월드컵북로9길-성미산로-월드컵북로 23길로 이어지는 선형이며, 남쪽 경계는 성미산로15길-성미산로19길-월드컵북로7길-월드컵로16길-월드컵로15길-월드컵로11길-회우정로로 이어지는 선형이다. 즉, 성산1동을 통과하여 망원역 북쪽을 지나 망리단길 인근에서 한강에 합류하던 하천이었다. 현재는 매립되어 주택가가 형성되었다.

다만 직강화공사와 별개로 사천이라는 동명의 개천[3]으로 구.홍제천에서 분리된 개천이 존재하였는데, 경성고등학교 인근에서 갈라져서 동교로27길-월드컵북로4길-동교로22길-월드컵로8길로 이어지는 지천이 존재하였다.

한편, 세교천이라는 하천도 존재하였는데, 안산에서 발원하여 동교동과 서교동 일대를 따라 옛 홍제천에 합류하였다. 현 연희로25길-동교로의 선형과 완벽히 일치한다.세교라는 이름은 홍대거리 주변의 잔다리와 홍대거리를 뚫고 지나가던 철도인 당인리선세교리역에 반영되어 있다.

5. 기타 [편집]

1.21 사태 당시 김신조가 자하문을 통화하려다가 세검천에서의 검문으로 발각되었는데, 여기서 세검천이 바로 홍제천이다.

홍제견인차량보관소-홍제교 구간은 복개되어 있다.

홍제천의 직강화공사로 인해 한강의 제1지류였던 불광천은 홍제천에 합류하므로써 한강의 제2지류가 되었다. 이 밖에도 난지천이 홍제천의 제2지류이다.
인공폭포는 겨울이 되면 인공 빙벽으로 변한다.

6. 관련 문서 [편집]

[1] 이는 수도권 전철 3호선홍제역의 역명 유래와 같다.[2] 여담으로, 중국 사신이 홍제원을 떠나 지금의 통일로를 따라가 한양에 도착하면 그들을 맞았던 것이 영은문이었다.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목적이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자는 것을 떠올리면 현 통일로의 길목이 중국과의 교류하는 통로였음을 알 수 있다.[3] 한강의 샛강과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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