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1967)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제6대 한정애 | → | 제7대 홍익표 | → | 현직 |
대한민국 제19-21대 국회의원 제8대 민주연구원 원장 홍익표 洪翼杓 | Hong Ihkpyo | |
출생 | |
거주지 | |
본관 | |
종교 | |
학력 | |
병역 | |
신체 | 175cm |
소속 정당 | |
지역구 | |
의원 선수 | 3 |
의원 대수 | |
소속 위원회 | |
현직 | |
경력 | |
SNS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67년 11월 20일,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태어났다. 이후 관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학부부터 박사까지 한양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군복무는 육군 정훈장교로 36개월을 복무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을 지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문제에 걸린 절친 임종석 대신 서울특별시 성동구 을 지역구에 후보로 나와, 새누리당 김동성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 그리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획정에 따른 통합 선거구인 서울특별시 중구·성동구 갑 지역구에 공천받아, 이번에도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2.1. 국회의원 활동 [편집]
2.1.1. 19대 국회 [편집]
초선 의원으로 원내대변인 등을 지내고,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 의원에 선정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여러 법안을 발의했는데, 대표적으로 <국민 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온 국민 3일 연휴제로 국민 휴식권을 보장 및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법률이다. 대형마트 출점에 따라 발생되는 지역 중·소상공인 피해 방지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률> 개정안 등 대표발의 법률안 44건·공동발의 법률안 201건 등 총 245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우리(국회)는 효율적이라고 해서 단 한 명의 국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5]
- 정치학 박사 출신답게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의의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국정원의 흑역사들을 하나하나 되짚어주면서 국정원이 그동안 얼마나 국가와 개인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법적 근거에 따라 정당하게 행해진 게 아니고 정부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행해졌다며 법치주의 국가로서 잘못된 행위였음을 지적했다.
- 같은 당의 홍종학 의원처럼 스케치북을 들고 나와 시각자료를 가끔 활용하기도 했으며, 방청객들 특히 여성분들이 귀가할 경우 조심히 들어가라고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1.2. 20대 국회 [편집]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옮겨 간 이언주의원이 여러가지 막말로 물의를 일으키자, 이에 대해 비판하면서 "더불어민주당도 책임이 있다. (저런 사람을) 공천해서 당선까지 시켰다. 국민에게 죄송하다"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잘못을 사과하는 체하면서 국민의당과 김종인을 정교하게 돌려서 대놓고 깠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김종인은 민주당 공천의 총책임자였기 때문이다.[8]
하지만 본인 역시 20대 폄훼 발언을 비롯한 각종 망언들로 인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대구ㆍ경북 봉쇄" 발언에 사과하고 2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직에서 사퇴했다. #
민주당의 잘못을 사과하는 체하면서 국민의당과 김종인을 정교하게 돌려서 대놓고 깠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김종인은 민주당 공천의 총책임자였기 때문이다.[8]
하지만 본인 역시 20대 폄훼 발언을 비롯한 각종 망언들로 인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대구ㆍ경북 봉쇄" 발언에 사과하고 2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직에서 사퇴했다. #
2.1.3. 21대 국회 [편집]
3. 논란 [편집]
4. 소속 정당 [편집]
소속 | 기간 | 비고 |
2012 - 2013 | 정계 입문 | |
2013 - 2014 | 당명 변경 | |
2014 - 2015 | 합당[9] | |
2015 - | 당명 변경 |
5. 선거 이력 [편집]
6. 둘러보기 [편집]
[A] 1.1 1.2 제20대 국회에서 성동구 을 선거구가 중구·성동구 갑으로 개편되었다.[3] 남양 홍씨 당홍계 34세손 '杓'자 항렬이다.[4] 홍익표 본인이 아니라 홍의원 측 관계자가 운영한다.[5] 민주주의는 기업과 다르게 효율성을 그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6] 법안 '처리율'의 특성상 당시 원내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유리했음은 감안하고 보자.[7] 하위 10명을 보면 최하위 문재인은 20대 총선에 나오지 않았지만 19대 대선에 출마하여 19대 대통령이 되었고, 이석현, 김태년, 우원식, 박덕흠, 박지원은 다시 20대 국회에 돌아왔다. 이 중 이석현과 박지원은 21대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8] 그러나 이언주는 20대 총선에서 첫 공천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19대 현역의원으로서, 김종인은 이언주를 공천에서 컷오프하지 않았던 것 뿐이었고, 19대 총선에서의 첫 공천 당시에는 당 대표가 한명숙이었으므로,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명숙까지 함께 비난한 셈이 되어 버렸다.[9]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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