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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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홍윤무는 1872년 1월 9일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홍종렬(洪鍾烈)이다. 그는 1907년 이석용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연락책의 소임을 맡아 자금 모집 활동을 실시했다. 1908년에 진안군에 살고 있던 김관일(金寬日)이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하며 의병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자, 흉윤무는 그를 살해한 후 3∼4차례에 걸쳐 인근의 부호와 면사무소(面事務所) 등을 침입하여 군자금을 마련하여 의진에 공급하였다.
그러나 이석용이 의병대를 해산한 뒤 숨어지내다가 1912년에 체포되었고, 1913년 2월 2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강도살인죄로 1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3월 19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8년에 가출옥했으며, 이후에는 향리에서 은거하다가 1943년 4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홍윤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이석용이 의병대를 해산한 뒤 숨어지내다가 1912년에 체포되었고, 1913년 2월 2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강도살인죄로 1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3월 19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8년에 가출옥했으며, 이후에는 향리에서 은거하다가 1943년 4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홍윤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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