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식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목차
1. 개요2. 생애3. 정치 활동4. 여담5. 소속 정당6. 선거 이력7.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대한민국정치인, 국회의원이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주활동 지역은 인천광역시다.

2. 생애 [편집]

1962년 2월 8일,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1년 늦게 갔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특채로 입학한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5.18 민주화운동을 목격하고 고등학교를 또 중퇴한 뒤 검정고시를 봐 1981년 인하대학교 국문학과를 입학해 대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하며 인천에서 뿌리를 내렸다. #
인하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경인일보, 한겨레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였다. 기자 시절, ‘인천 북구청(지금의 부평구청) 세금 횡령 사건’을 단독취재 및 보도하여 ‘세도(세금 도둑)’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전국적 이슈를 만든 공으로 <한국기자대상>을 수상하였다.

한겨레로 이직하면서 당시 아스팔트 밑에 흐르는 청계천을 언론에서 처음으로 복원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여 청계천 복원에 대한 이슈를 만들었다.

3. 정치 활동 [편집]

2011년 1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송영길 인천광역시장의 선택으로 인천광역시청 대변인을 지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홍일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 후 더불어민주당 미추홀구 갑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2018년 7월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에 의해 초대 인천광역시 균형발전정무부시장으로 역임하였다. 균형발전정무부시장으로 역임하면서, 인천 원도심 관련부서 및 업무를 총괄 지휘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2019년 12월 균형발전정무부시장직을 사임하였다.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미추홀 갑에 공천되었다. 그러나 선거구획정에서 기존 미추홀 갑 지역에 동구가 편입되면서 동구·미추홀구 갑으로 출마지역이 변경되었다.

이에 기존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의 민주당 후보로 공천된 조택상 후보와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동구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 결과 미래통합당 전희경 후보를 8천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해당 지역구가 인천 내에서 군 지역을 제외하면 보수세가 가장 강한 성향이라 쉽지 않은 선거구였지만 인천에 지역기반이 전혀 없었던 전 후보와는 달리 인천에서 오랜 시간 동안 기반을 다져온 것이 승리 요인이라는 평가가 있다.

4. 여담 [편집]

  • 가리포(완도군의 구명) 민란[4]의 주도자였던 허사겸의 4대손이다.
  • 그의 두 아들 중 한 명이 아버지의 선거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유세를 하며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있다. 사실 다른 아들도 아버지의 첫 선거 때 함께하긴 했다.

5. 소속 정당 [편집]

소속
기간
비고
2016 -
정계 입문

6. 선거 이력 [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6
29,523 (35.50%)
낙선 (2위)
2020
63,480 (48.77%)
당선 (1위)
초선

7. 둘러보기 [편집]

[1]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선거구의 제20대 국회의원이다.[2] 남구 갑 선거구의 제20대 국회의원이다.[3] 재검과 소집을 2~3회 반복하다 나중에 소집면제 처분을 받았다.[4] 민란이란 이름과는 달리 탐관오리들을 죽이지는 않고 그들의 수탈품만 뺏었다고 한다. 하지만 민란이라는 이름 하에 정부군에 의해 체포된 허사겸은 처형당했다. 이후 완도에는 그를 기리는 창의사라는 건물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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