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내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허내삼(許迺三)
생몰
경기도 개성군 중서면 곡령리
사망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허내삼은 1888년 5월 3일 경기도 개성군 중서면 곡령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1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리 사람들에게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후 4월 1일 오후 8시 마을 사람들에게 몽둥이와 기와 조각을 가지고 만월대 부근까지 행진하게 했다. 이때 이를 진압하기 위해서 개성 경찰서로부터 출동한 9명의 일본 경찰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는 앞장서서 일경을 포위하여 몽둥이로 내리치고 기와조각을 던져 부상을 입게 하였다.

이후 일단 몸을 피한 그는 되돌아가서 집단으로 싸움을 벌이다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 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허내삼의 막내아들인 허상희 씨의 회고에 따르면, 허내삼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다른 감방에 수감된 유관순과 수신호로 소통했다고 한다. 이때 유관순은 창문을 통해 손가락으로 글씨를 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내가 벌거벗고 신문 받을 때는 피눈물이 나더니 동지들 만나 뵈니 반가움에 눈물이 납니다.”

허내삼은 그렇게 유관순과 소통하다 중간에 다른 형무소로 끌려갔고, 그 때문에 유관순이 옥사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고 한다.# 출옥 후 목회 활동과 육영사업에 전념하던 그는 6.25 전쟁 발발 후 1.4 후퇴 때 가족을 데리고 피난가서 대구에 정착했다가 1964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허내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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