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태영(1894)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함태영(咸泰榮)
이명
함하은(咸河殷)
생몰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함태영은 1894년 6월 8일 함경남도 덕원(원산) 광석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무렵 진성여학교(進誠女學校) 교사이자 기독교도로 활동했다. 그는 정춘수의 지도하에 14명의 학생들과 모임을 갖고 3월 1일에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하고 태극기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각 교회에서 종이 울리자, 함태영을 비롯한 주도 인물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며 장촌동 시장으로 행진하였다. 군중이 운집하자 일제 군경은 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일부는 흩어지고 일부는 역 앞으로 가서 시위를 계속하다가 저녁 6시경 해산하였다. 이날은 원산 장날이라 참가자가 2,000여 명이나 되었으며, 현장에서 50명이 체포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9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그해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자 상고했지만, 1919년 7월 3일 곡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1월 3일 출옥했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함태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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