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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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한희수는 1870년 9월 26일 강원도 김화군 금성면 경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음력 11월 강원도 김화군 금성면 방충리에 있는 기독교 예배당에서 이명식(李明植)으로부터 "중국 상해(上海)에는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조직되어 있으나 자금부족으로 곤궁하므로 우리들도 금을 모아 정부 조직원에게 송부하여 조선독립운동을 원조하자"는 권유를 받고 대한청년회지부(大韓靑年會支部)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한 후원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예배당에 다니는 교우 등 수 십 명과 상의한 후 대한청년회지부를 통해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1920년 4월경에는 경성에서 이병욱(李秉郁)·최지수(崔芝秀)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규칙서 및 애국금 영수증 용지, 독립신문 등을 이용하여 조선 내에서 대한독립청년단 지부를 설치하고 단원을 모집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다.
그러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21년 6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한희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는 예배당에 다니는 교우 등 수 십 명과 상의한 후 대한청년회지부를 통해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1920년 4월경에는 경성에서 이병욱(李秉郁)·최지수(崔芝秀)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규칙서 및 애국금 영수증 용지, 독립신문 등을 이용하여 조선 내에서 대한독립청년단 지부를 설치하고 단원을 모집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다.
그러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21년 6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한희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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