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섭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한태섭(韓台燮) |
이명 | 한용휴(韓用休) |
자 / 호 | 응필(應弼) / 묵랑(墨浪) |
생몰 | |
사망지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한양이는 그의 차남이다.
2. 생애 [편집]
한태섭은 1854년 12월 20일 경상도 용궁현 신읍면 송암리(현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송암리)에서 아버지 한병추(韓秉樞)와 어머니 해주 최씨 최용주(崔用周)의 딸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잇달아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1896년 1월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 의병장에게 아들 한양이와 함께 가담하여 참모관(參謀官)에 임명되었다. 이후 동지 수백 명과 함께 안동 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 등 3인을 생포하여 농암(籠巖)시장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이들의 매국 행상을 규탄하고 효수하였다.
또한 1896년 1월 15일 문경 마고산성(麻姑山城)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2월 이후 유인석 의병장의 부대에 편입되어 7월에 해산될 때까지 충북 일대에서 활동했다. 의병 해산 후 자택에 귀가했던 그는 1907년 이강년이 재차 의병을 일으키자 즉각 아들과 함께 가담하여 문경, 여주, 갈평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병에 걸려 귀가했고, 12월 20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한태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1896년 1월 15일 문경 마고산성(麻姑山城)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2월 이후 유인석 의병장의 부대에 편입되어 7월에 해산될 때까지 충북 일대에서 활동했다. 의병 해산 후 자택에 귀가했던 그는 1907년 이강년이 재차 의병을 일으키자 즉각 아들과 함께 가담하여 문경, 여주, 갈평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병에 걸려 귀가했고, 12월 20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한태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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