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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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한진수는 1882년생이며 전라북도 무주군 포곡면 치목리 출신이다. 그는 1907년 음력 10월에 문태수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고, 그해 10월 하순 문태수를 비롯한 약 20명의 의병과 함께 전북 무주군 횡천면 와석리의 민가에 들어가 “우리는 의병이니 군수금을 차출하라”고 하며 엽전 1백 냥을 모집하였다. 또한 같은 해 음력 11월 중순경 무주군 상곡면 상조리에서 같은 방법으로 엽전 1백 50냥, 같은 달 하순경 경남 안의군 북상면 황산리에서 엽전 3백 냥, 무주군 상곡면 괴목리에서 벼 1백 석을 모집하였다.
1907년 음력 12월 상순 안의군 북상면 사양동에서도 현금 1백 20원, 같은 달 중순경 전북 용담군 금곡리에서 엽전 1백 냥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하순 무주군 부남면 대곡리에서 엽전 100냥, 무주군 이안면 사전리에서 엽전 80냥을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일제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10년 1월 3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한진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07년 음력 12월 상순 안의군 북상면 사양동에서도 현금 1백 20원, 같은 달 중순경 전북 용담군 금곡리에서 엽전 1백 냥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하순 무주군 부남면 대곡리에서 엽전 100냥, 무주군 이안면 사전리에서 엽전 80냥을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일제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10년 1월 3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한진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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