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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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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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장석 前 감독(오른쪽). 왼쪽은 아들 한승혁.
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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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장석 前 감독(오른쪽). 왼쪽은 아들 한승혁.
대한항공 배구단 역대 감독 | ||||
유석철 (1986~1996) | → | 한장석 (1996~2001) | → | 최천식(대행) (2001~2002) |
1. 소개 [편집]
2. 상세 [편집]
인하대학교 재학 시절이었던 1980년대 후반 왼손잡이 세터로 맹활약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세터 중에 장신이었던 188cm의 키를 가졌고, 라이트 세터로써 왼손잡이라는 유리함을 지녔기 때문에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망주로 지목되었다. 라이트로 전향한 인하부고 3학년 때부터 12년간 국가대표 스타출신 공격수로 지냈고, 동기들보다 이른 1994년에 플레잉 코치직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은사인 유석철 대한항공 배구단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이 되었다. 이 때 나이가 34세로 당시에는 국내 실업배구 사상 최연소 감독이었다.# 그리고 이 때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면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따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01년까지 대한항공의 감독직을 맡고 물러났다. 하지만 물러난 과정은 참 안습했는데, 2001년 당시 슈퍼리그(세미프로리그)에서 프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경수의 드래프트 파동이 일어나 이에 불만을 드러낸 대한항공이 팀 해체도 불사하며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던 도중, 팀원들을 모아 놓고 회식하면서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다가 박석윤 선수의 의견에 발끈해 컵을 집어던져서 선수의 귀가 찢어지는 사고가 나면서 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최천식이 감독 대행을 잠시 맡았다.
2001년까지 대한항공의 감독직을 맡고 물러났다. 하지만 물러난 과정은 참 안습했는데, 2001년 당시 슈퍼리그(세미프로리그)에서 프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경수의 드래프트 파동이 일어나 이에 불만을 드러낸 대한항공이 팀 해체도 불사하며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던 도중, 팀원들을 모아 놓고 회식하면서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다가 박석윤 선수의 의견에 발끈해 컵을 집어던져서 선수의 귀가 찢어지는 사고가 나면서 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최천식이 감독 대행을 잠시 맡았다.
3. 여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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