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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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한이경은 1883년생이며 평안북도 의주군 고관면 용화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8월 자금 모집과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친일배의 주살(誅殺)을 목적으로 평북 의주군 동암산을 근거지로 하는 보합단(普合團)이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친일재산가를 살해하고 한편으로 사제폭탄 10여개를 제조하여 일제관공서를 파괴하며 군자금 3,000여원을 모집하고 의주군 월화면장(月華面長)인 신봉주(申鳳周)로부터 장총 한자루를 탈취하여 활동하다가 여승(女僧)의 밀고로 일경의 급습을 받고 교전 끝에 체포되었다.
이후 1921년 6월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및 폭발물취체규칙 위반, 강도·살인·방화죄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언도받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했지만 재판 결과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며, 옥고를 치르던 중 1927년경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사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한이경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후 1921년 6월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및 폭발물취체규칙 위반, 강도·살인·방화죄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언도받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했지만 재판 결과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며, 옥고를 치르던 중 1927년경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사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한이경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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