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옥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한신옥은 1905년 3월 20일 평안북도 용천군 외상면 정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음력 7월 중국 봉천성 해룡현 북산성자에서 청년회를 조직했고, 1927년 북산성자청년회를 역임했다. 1928년 음력 5월 정의부(正義府) 제3구 서기로 청원현 상황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수행하다 8월 22일 일제 관헌에게 체포되었고, 1929년 4월 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0년 12월 13일에 출옥했다.
이후 동아일보 안동현 지국장을 지내던 그는 조선혁명당 당원이었던 서원준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 계획을 수립했으며, 서원준이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 고이허로부터 받은 권총과 탄환으로 무장하고 1933년 1월 평북 남시에서 군자금 1,600여 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34년 10월 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범인 은닉, 강도 방조, 총포화약취체시행규칙 위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0년 10월 9일에 출옥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임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한신옥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후 동아일보 안동현 지국장을 지내던 그는 조선혁명당 당원이었던 서원준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 계획을 수립했으며, 서원준이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 고이허로부터 받은 권총과 탄환으로 무장하고 1933년 1월 평북 남시에서 군자금 1,600여 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34년 10월 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범인 은닉, 강도 방조, 총포화약취체시행규칙 위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0년 10월 9일에 출옥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임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한신옥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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