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한(韓)씨 가문 12대 종주 한(韓)나라 초대 국군 경후 景侯 | |||
희(姬) | |||
한(韓) | |||
건(虔) | |||
아버지 | 한무자(韓武子) 한계장(韓啓章)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400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408년 ~ 기원전 400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한 무자(韓武子)[1]인 한계장이 기원전 409년에 죽으니, 그 아들인 한건이 뒤를 이었다. 그가 바로 한경후다.
한 경후 원년(기원전 408년), 경후가 정나라를 쳐서 옹구(雍丘)를 취했다.
한 경후 2년(기원전 407년), 정나라가 한씨의 영토인 부서(負黍)를 쳤다. 그리고 거기서 한군이 패배했다.[2]
한 경후 6년(기원전 403년), 위열왕은 한 경후, 조 열후, 위 문후를 정식 제후로 임명했고,이로써 한나라가 세워졌다. 그리하여 진(晉)나라는 공식적으로 삼분되었다.
한 경후 9년(기원전 400년), 경후는 위나라 및 조나라와 힘을 합쳐 초나라를 공격해 상구에 이르렀다. 오래지 않아 정나라가 한나라의 수도인 양적(陽翟)을 포위했다. 바로 한군이 초나라를 치는 틈을 노린 것이다. 같은 해 한 경후가 죽자 그 아들인 한취(韓取)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한 열후다.
한 경후 원년(기원전 408년), 경후가 정나라를 쳐서 옹구(雍丘)를 취했다.
한 경후 2년(기원전 407년), 정나라가 한씨의 영토인 부서(負黍)를 쳤다. 그리고 거기서 한군이 패배했다.[2]
한 경후 6년(기원전 403년), 위열왕은 한 경후, 조 열후, 위 문후를 정식 제후로 임명했고,이로써 한나라가 세워졌다. 그리하여 진(晉)나라는 공식적으로 삼분되었다.
한 경후 9년(기원전 400년), 경후는 위나라 및 조나라와 힘을 합쳐 초나라를 공격해 상구에 이르렀다. 오래지 않아 정나라가 한나라의 수도인 양적(陽翟)을 포위했다. 바로 한군이 초나라를 치는 틈을 노린 것이다. 같은 해 한 경후가 죽자 그 아들인 한취(韓取)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한 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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