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원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河允源
1322 ~ 1376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담지(湛之). 호는 고헌(苦軒). 찬성사로 치사하고 진주군(晉州君)에 봉해진 하즙(河楫)의 아들이다.

충혜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전교교감(典校校勘)에 보임되고, 공민왕 때 홍건적이 침입하자 전리총랑(典理摠郎)으로 여러 장수를 따라 개경 수복에 종군한 공로로 2등공신이 되었다. 뒤이어 경상도·서해도·양광도·교주도의 안렴사와 원주·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신돈이 권세를 부릴 때도 아첨하지 않았다.

우왕 초에는 대사헌에 제수되고 진산군에 봉해졌으나 모친상을 당해 낙향하여 시묘살이하던 중 사망했다. 우왕이 복귀를 명하였으나 교서가 이르기 전에 죽었다.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아들이 하자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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