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카와도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카이-사가미-스루가(甲斐-相模-駿河) 삼국동맹을 위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아들 이마가와 우지자네에게 시집갔다. 이때 신부 행렬이 굉장히 호화로웠다고 전해지는데, 우지야스로서는 이마가와 쪽에 호조의 부를 과시하는 기회이므로 힘을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요시모토 사후 카이의 다케다 신겐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밀약을 맺고 스루가를 침공하자, 하야카와도노는 이마가와 일가를 이끌고 호조에 귀순했다. 우지야스는 귀한 딸이 가마에도 타지 못 하고 급히 탈출한 것을 알고 격노, 며느리인 다케다 신겐의 딸을 내쫓았다. 이 때 머문 지역이 '하야카와'였기 때문에 하야카와도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지야스가 죽은 뒤 호조 우지마사는 다케다-호조 동맹을 되살렸는데, 그 대가로 우지자네를 다케다 가에 내주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동생의 배신에 격노한 하야카와도노는 우지자네와 함께 사가미를 떠나 이세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하마마쓰로 들어갔다. 이 일을 계기로 이에야스에 귀순했다.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우지자네와 함께 교토로 들어갔다가 에도 시대로 접어들면서 에도에 머물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1614년 남편보다 먼저 사망했다. 도쿄에 묘가 있다.
우지야스가 죽은 뒤 호조 우지마사는 다케다-호조 동맹을 되살렸는데, 그 대가로 우지자네를 다케다 가에 내주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동생의 배신에 격노한 하야카와도노는 우지자네와 함께 사가미를 떠나 이세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하마마쓰로 들어갔다. 이 일을 계기로 이에야스에 귀순했다.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우지자네와 함께 교토로 들어갔다가 에도 시대로 접어들면서 에도에 머물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1614년 남편보다 먼저 사망했다. 도쿄에 묘가 있다.
3. 창작물 [편집]
3.1. 전국무쌍 시리즈 [편집]
3.2. 노부나가의 야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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