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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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피바디상은 1939년 거부 조지 포스터 피바디의 기부로 만들어졌으며 미국방송협회(NAB)와 조지아 대학교가 수여하는 방송계 최고의 권위있는 상의 하나로 꼽힌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2. 상세 [편집]

피바디상은 1941년 창설되었다.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케이블을 포함한 전자 미디어 상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개인에게 주어진다. 미국 내 방송계에서는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으며, 방송 텔레비전 분야의 퓰리처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상은 1940년대 미국의 거부였던 조지 포스터 피바디의 기부로 인해 생겼다. 매해 국제대회의 형식으로 시상 활동이 이루어진다. 출품 장르는 뉴스, 오락, 어린이, 교육, 다큐멘터리 등 총 7개 분야이다. 이 상은 기업의 영상 콘텐츠에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심사는 조지아 대학의 관리 하에 16명의 전문가 패널이 매년 봄 그해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초기에 이 상은 라디오 부문만 시상했다. 1948년부터 텔레비전도 포함됐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전자 미디어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 상은 단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성과보다는 프로그램과 콘텐츠의 우수한 질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해 약 1000건 이상의 후보작들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지며, 심사는 약 30여명의 위원회 인력들이 맡는다. 최종 결정은 피바디 위원장이 선정한 16명의 패널들(교수, 미디어 업계 전문가들) 몫이다. 2011년과 2012년 선정위원으로는 뉴지엄(Newseum) 관장인 조 어쉘(Joe Urshchel), 영국필름협회 큐레이터인 스티브 브라이언트(Steve Bryant), 조지아대 흑인 1호 입학자면서 현직 언론인으로 일하는 찰레인 골트(Charlayne Gault), 펜실베니아대학의 석좌교수면서『9·11 이후의 저널리즘』을 쓴 바비 젤리저(Barbie Zelizer) 등이 있다. 수상자 선정에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심사위원의 임기는 보통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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