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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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忠寺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삼국 통일을 기원하고자 원효스님이 터를 잡아 창건한 죽림정사(竹林精寺)를 신라 흥덕왕 4년때 인도 스님인 황면(黃面)선사가 현재의 자리에 재건하고 삼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하였다.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여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여 가람을 크게 부흥시키고, 사찰명을 영정사라 명명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 표충사는 보우, 해린, 일연, 천희 등 사대 국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국내 제일의 선찰로 번창했고, 고려 충렬왕이 이곳을 찾아 찬탄하고 일국지명산, 동방제일 선찰이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일연 국사가 삼국유사를 이곳에서 완성했다고 전한다.
10.27 법난의 피해 사찰 중 하나이며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표지가 절에 세워져있다. 현대에 들어 표충사는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한 효봉 대선사가 주석하다가 1966년에 열반한 곳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들어 표충사는 보우, 해린, 일연, 천희 등 사대 국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국내 제일의 선찰로 번창했고, 고려 충렬왕이 이곳을 찾아 찬탄하고 일국지명산, 동방제일 선찰이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일연 국사가 삼국유사를 이곳에서 완성했다고 전한다.
10.27 법난의 피해 사찰 중 하나이며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표지가 절에 세워져있다. 현대에 들어 표충사는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한 효봉 대선사가 주석하다가 1966년에 열반한 곳이기도 하다.
1946년 여름, 김원봉이 첫아들 '중근'을 안고 밀양의 표충사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
3. 문화재 [편집]
4. 찾아가는 법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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