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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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평창군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이다.

2. 고조선 [편집]

단군조선대에 독자적으로 있다가 위만조선대에 위만에게 복속되었다.

3. 원삼국시대 [편집]

한사군에 속해있다가 독립하였다. 진한과 예국(동예)의 요충지였다.

4. 삼국시대 [편집]

예국(동예)이 고구려에 복속된 후 욱오현(郁烏縣)으로 개칭되었다. 진흥왕신라에 편입되었다.

5. 남북국시대 [편집]

신라 경덕왕 때 백오현(白烏縣)으로 개칭하고 명주에 소속시켰다.

6. 후삼국시대 [편집]

7. 고려시대 [편집]

백오군에서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평창군으로 개칭하였다.

8. 조선시대 [편집]

황색 : 평창군(平昌郡)
녹색 : 강릉군(江陵郡)
  1. 북면(北面)
    2. 남면(南面)
    3. 군내면(郡內面)
    4. 미탄면(美灘面)
  1. 봉평면(蓬坪面)
    2. 진부면(珍富面)
    3. 도암면(道岩面)
    4. 대화면(大和面)
현재의 평창군 군역이 만들어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동여지도에는 평창읍, 미탄면과 현재의 정선군 신동읍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강릉대도호부의 영역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때의 평창현은 지금과는 다르게 의외로 엄청 코딱지만했다. 그 당시에는 원주강릉이 서로 경계를 접하고 있었을 정도. 음성군과 비슷한 케이스.[1] 조선시대에는 큰 고을일수록 관할 구역이 넓었던 특징이 있는데, 강릉대도호부도 대관령 너머까지 관할했다.

9. 구한말 [편집]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강릉군의 영서지방 지역의 대부분이 분리되어 대화면, 봉평면, 진부면이 평창군으로, 도암면이 정선군으로 편입되었다.[2] 동시에 평창군의 실질월경지였던 동면을 정선군으로 넘겼다(이후 신동면으로 개칭).

10. 일제강점기 [편집]

황색 : 평창군(平昌郡)
녹색 : 정선군(旌善郡)
  1. 봉평면
    2. 진부면
    3. 대화면
    4. 평창면(平昌面)
    5. 미탄면(美灘面)
  1. 도암면(道岩面)
1914년 군내면, 북면, 남면을 평창면으로 편제하였다.1931년 정선군으로부터 도암면(현 대관령면)을 가져와 현재의 군역이 완성되었다.[3] 1934년에 대화면의 일부를 방림면으로 분리하였다.

11. 현대 [편집]

황색 : 평창군(平昌郡)
  1. 봉평면(蓬坪面)
    2. 용평면(龍坪面)
    3. 진부면(珍富面)
    4. 대관령면(大關嶺面)
    5. 방림면(芳林面)
    6. 대화면(大和面)
    7. 평창읍(平昌邑)
    8. 미탄면(美灘面)
1979년 평창면이 평창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봉평면과 진부면의 일부를 용평면으로 분리하였다. 2007년에 지역 홍보를 위해 도암면을 대관령면으로 개칭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대관령을 사이로 맞대고 있는 강릉시의 반발이 있었다.
[1] 이쪽도 사실 오리지날 음성의 영역은 음성읍, 원남면밖에 안 되며, 나머지는 전부 충주목 관할이었다. 오리지날 음성의 서쪽 지역은 월경지 정리 때, 동쪽의 소이면은 부군면 통폐합 때 얻어왔다.[2] 임계면도 정선군으로 편입되었고, 내면인제군으로 편입되었다가 38선이 그이면서 홍천군으로 편입되었다.[3] 현 대관령면 영역을 보면 정선군(북평면, 여량면)과는 닿아있지 않는데, 현 진부면 봉산리가 당시 도암면 관할이었으며 이를 통해 정선군 북평면(당시 북면)과 이어져 있었기에 월경지는 아니었다. 봉산리는 1973년 진부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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