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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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세종의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 1432) [편집]
조선 세종 14년인 1432년, 세종의 명으로 대제학 변계량(卞季良) 등이 제작한 조선 왕조 최초의 지리지.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만들어졌던 미신적인 음양풍수지리지(陰陽風水地理志)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드디어 과학적인 인문지리학으로 변화되는 최초의 지리지라고 말할 수 있다.
세종때 만들어진 신찬팔도지리지 중 지금까지 현존하는 것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뿐이며, 나머지 지역의 지리지들은 모두 소실된 상태다.
훗날 세종의 신찬팔도지리지를 저본으로 하여 조선의 대표 관찬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가 완성된다.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만들어졌던 미신적인 음양풍수지리지(陰陽風水地理志)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드디어 과학적인 인문지리학으로 변화되는 최초의 지리지라고 말할 수 있다.
세종때 만들어진 신찬팔도지리지 중 지금까지 현존하는 것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뿐이며, 나머지 지역의 지리지들은 모두 소실된 상태다.
훗날 세종의 신찬팔도지리지를 저본으로 하여 조선의 대표 관찬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가 완성된다.
2. 세조의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1455) [편집]
조선 세조 1년인 1455년 8월 12일에 세조의 명으로 직제학 양성지(梁誠之) 등이 제작한 지리지. 1478년(성종 9년)에 최종 완성되었다.
세종 때 만들어진 신찬팔도지리지에서 이후 세월이 지나며 변화된 내용들을 추가로 증보하고, 기존보다 좀 더 세밀히 작성된 지도 또한 만들어 수록한 것이다.
세종의 신찬팔도지리지 중에서 지금 현존하는 것이 경상도지리지 하나뿐인 것과 똑같이, 세조의 팔도지리지 또한 지금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하나만이 남아있고 나머지 지역의 지리지들은 모두 소실된 상태다. 때문에 세조의 팔도지리지와 세종의 신찬팔도지리지를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훗날 세조의 팔도지리지를 저본으로 하여 조선 지리지 제일서이자 최종 완성형이라 불리는 동국여지승람 50권 50책, 신증동국여지승람 55권 55책이 최종 완성된다. 이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들은 세조의 팔도지리지를 저본으로 하여 《동문선(東文選)》, 《동국시문(東國詩文)》 등에 수록된 우리나라 문사(文士)들의 시문(詩文)들을 추가하여 만든 것이다.
세종 때 만들어진 신찬팔도지리지에서 이후 세월이 지나며 변화된 내용들을 추가로 증보하고, 기존보다 좀 더 세밀히 작성된 지도 또한 만들어 수록한 것이다.
세종의 신찬팔도지리지 중에서 지금 현존하는 것이 경상도지리지 하나뿐인 것과 똑같이, 세조의 팔도지리지 또한 지금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하나만이 남아있고 나머지 지역의 지리지들은 모두 소실된 상태다. 때문에 세조의 팔도지리지와 세종의 신찬팔도지리지를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훗날 세조의 팔도지리지를 저본으로 하여 조선 지리지 제일서이자 최종 완성형이라 불리는 동국여지승람 50권 50책, 신증동국여지승람 55권 55책이 최종 완성된다. 이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들은 세조의 팔도지리지를 저본으로 하여 《동문선(東文選)》, 《동국시문(東國詩文)》 등에 수록된 우리나라 문사(文士)들의 시문(詩文)들을 추가하여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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