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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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804년 심지(心地)가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05년 중창되었다가 1695년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 최씨의 꿈에 나타났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사대부들에 의한 불교 탄압이 극심하였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蓋金)[1]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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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건물 [편집]
4. 교통 [편집]
5. 기타 [편집]
파계삼거리로 올라가는 길부터 파계사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많은 카페와 식당 등이 형성되어 있다. 산 속에 위치하면서도 도로가 잘 되어 있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이 많아 팔공산으로 드라이브 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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