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어(독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트리어 Trier | |||||
휘장 | |||||
트리어의 위치 | |||||
행정 | |||||
국가 | |||||
시간대 | (UTC+1/+2) | ||||
주 | |||||
인문환경 | |||||
면적 | 117.13km² | ||||
인구 | 110,636명 | ||||
인구밀도 | 940명/km² | ||||
정치 | |||||
시장 | 볼프람 라이베 | ||||
1. 개요 [편집]
독일 서남부의 인구 10만의 소도시.
2. 역사 [편집]
독일의 가장 오래 된 도시 중 하나로, 본래 게르만 족인 트레베리 족의 중심지였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패하여 로마에 복속된 후 아우스투스 황제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건설한 것이 유래이다. 이 도시는 1세기 중후반인 서기 69년에 4황제 시대[1]에 율리우스 키빌리스의 반란이 일어났던 근거지이도 하였다. 또한 3세기 로마 제국 분열기의 갈리아 제국의 수도로 정해지기도 하였다. 포르타 니그라, 뢰머 다리(뢰머브룩), 콘스탄틴 바실리카 등 로마 시대의 거대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중세시대 때는 위상이 매우 높은 도시 중 하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권한이 있는 선제후 중 세 명의 성직제후 중에 트리어 대주교도 있었기 때문.
중세시대 때는 위상이 매우 높은 도시 중 하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권한이 있는 선제후 중 세 명의 성직제후 중에 트리어 대주교도 있었기 때문.
3. 여담 [편집]
카를 마르크스의 고향으로 중국인들이 많이 찾아 온다. 2017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6m 크기의 마르크스 동상을 선물했으나 '너무 사회주의적'이라고 주민들이 반발했다. 시 의회는 결국 동상을 수용하기로 했으나 진통이 계속될 듯 하다.
트리어 당국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마르크스 초상을 삽입한 '0유로' 지폐를 기념품으로 내놓아 대히트를 시켰다.#1#2
SV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05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트리어 당국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마르크스 초상을 삽입한 '0유로' 지폐를 기념품으로 내놓아 대히트를 시켰다.#1#2
SV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05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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