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통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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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전 터 추정지

목차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

1. 개요 [편집]

昌德宮 通和殿

창경궁건물이다. 현재는 없다. 명정전의 북쪽, 영춘헌의 동쪽에 있었다.

2. 이름 [편집]

‘통화(通和)’ 뜻은 ‘통(通)하여 화합(和)한다’이다. 전화하는 거 아니다

3. 역사 [편집]

언제 지었는지 모른다. 가장 많은 기록이 보이는 때는 순조 시기이다. 1815년(순조 15년)에는 순조의 친할머니 혜경궁 홍씨의 혼궁으로, 1821년(순조 21년)에는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혼전으로 사용했다.# 1830년(순조 30년)에는 효명세자의 혼궁으로 쓰는 등 국상 때 주로 이용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833년(순조 33년) 창경궁 대화재 때 불탄 후 중건하지 않았다고 하나, 1907년(융희 원년) ~ 1908년(융희 2년)에 제작한 《동궐도형》에도 모습이 보이므로, 화재를 입지 않았거나 입었어도 다시 지어 순종 때까지 남아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없다. 철거 시기는 정확히 모르나 창경궁창경원으로 개조할 때 헐린 듯 하다.

4. 구조 [편집]

※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옛 기록과 그림들로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아래 적은 건물의 특징은 《궁궐지》와 1828년 ~ 1830년에 그린 《동궐도》, 1908년에 그린 《동궐도형》, 1830년 ~ 1908년 사이에 그린# 《통화전 도형》을 참고하여 적은 것이다.
《동궐도》의 통화전
  • 기단은 장대석으로 3단을 쌓았으며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남향(南向)이었다.
  •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공포는 이익공 양식이었다. 용마루와 추녀마루, 내림마루는 기와로 쌓았으며 용두와 취두를 올렸다.
  • 《궁궐지》에 따르면, 정면 3칸, 측면 4칸, 총 12칸이었다. 《동궐도》를 보면, 정면 가운데 칸 앞으로 장대석 2단을 깔았으며 그 가운데에 다시 장대석 2단을 놓아 어도(御道)를 만들고, 어도의 중간부터 건물 앞까지 복도를 설치했다. 복도 측면마다 을 두었으나 건물과 맞닿은 칸의 측면은 외부와 통해있었다. 《동궐도형》에는 복도가 보이지 않는다.
  • 《동궐도형》에 따르면, 실내는 전부 마루방이다. 전면과 후면의 3칸은 툇간이다.
  • 행각 구조는 《통화전 도형》과 《동궐도형》에 자세히 나와있다.
    《통화전 도형》의 통화전 일대 평면도# (왼쪽), 《동궐도형》의 통화전 일대 평면도#
    초록색 원 안이 통화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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