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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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游
생몰년도 미상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자상(子相).
상당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유학에 뛰어나면서 조용하고 부드러워면서 겸손했으며, 위나라 말에는 효렴으로 천거되어 재상의 집에 머물렀다.
진나라가 세워지자 태시(265 ~ 274년) 초에는 사마소 휘하의 하급 관료에서 낭중으로 옮겨졌고 유연, 주기, 범륭 등에게 모시, 경씨역 등을 학문을 가르쳤으며, 76세에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힘썼다.
팔왕의 난으로 유연이 사마영 휘하로 참전했다가 그 난으로 인해 서진이 혼란한 틈을 타서 304년에 유연이 한왕으로 즉위해 한나라를 건국했는데, 유연이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원희(元熙)라 하면서 촉한의 황제인 유선(劉禪)을 추존해 효희황제라 하면서 한고제 이하 3조, 5종의 신주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또한 여러 사람을 관직에 임명해 처인 호연씨를 왕후로 삼고 유선(劉宣)을 승상, 유굉을 태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각기 차이를 두어 임명하면서 최유는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최유는 관직을 받는 것은 사양했고 93세에 사망했다.
생몰년도 미상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자상(子相).
상당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유학에 뛰어나면서 조용하고 부드러워면서 겸손했으며, 위나라 말에는 효렴으로 천거되어 재상의 집에 머물렀다.
진나라가 세워지자 태시(265 ~ 274년) 초에는 사마소 휘하의 하급 관료에서 낭중으로 옮겨졌고 유연, 주기, 범륭 등에게 모시, 경씨역 등을 학문을 가르쳤으며, 76세에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힘썼다.
팔왕의 난으로 유연이 사마영 휘하로 참전했다가 그 난으로 인해 서진이 혼란한 틈을 타서 304년에 유연이 한왕으로 즉위해 한나라를 건국했는데, 유연이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원희(元熙)라 하면서 촉한의 황제인 유선(劉禪)을 추존해 효희황제라 하면서 한고제 이하 3조, 5종의 신주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또한 여러 사람을 관직에 임명해 처인 호연씨를 왕후로 삼고 유선(劉宣)을 승상, 유굉을 태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각기 차이를 두어 임명하면서 최유는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최유는 관직을 받는 것은 사양했고 93세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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