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오득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충청남도 천안군 풍세면 미죽리
사망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108실 171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오득은 1884년 2월 28일 충청남도 천안군 풍세면 미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허병, 이문현(李文鉉)·인시봉(印時鳳) 등과 함께 천안읍 장날인 3월 29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3월 29일 오후 2시경, 허병, 이문현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군중에게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또한 최오득은 30∼40명의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인시봉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67년 2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최오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7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108실 171호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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