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봉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
경상남도 김해군 | |
이명 | 최여봉(崔如鳳), 최해봉(崔海鳳)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여봉은 1900년 1월 15일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 부원리(현재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경남 울산 언양에서 김해청년회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1928년 신간회 김해지회 간사로 활동했다. 이후 김해청년동맹(金海靑年同盟)에서 국제청년데이(國際靑年日)를 기념해 개최한 강연회에서 ‘무산청년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30년 김해 읍내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관련된 내용의 격문살포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의 관련자로 일경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뒤 며칠 만에 훈방 조치되었다.
1931년 9월 경남 양산군 상서면에서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朝鮮共産黨再建協議會) 관계자 권대형 등과 만나,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고 노동자·농민의 혁명의식을 양성시키고 이들을 지도할 경남지방에서의 적색농민조합건설협의회를 조직할 것을 협의하고 그 자리에서 경남적색농민조합동부위원회(慶南赤色農民組合東部委員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최여봉은 이 비밀결사의 책임자로 추대되었고, 이후 김해, 창원, 울산 등지에서 농민조합을 지도하며 활동하였다. 이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1933년 3월 2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월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33년 5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김해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0년 2월 8일에 사망했다.
1930년 김해 읍내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관련된 내용의 격문살포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의 관련자로 일경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뒤 며칠 만에 훈방 조치되었다.
1931년 9월 경남 양산군 상서면에서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朝鮮共産黨再建協議會) 관계자 권대형 등과 만나,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고 노동자·농민의 혁명의식을 양성시키고 이들을 지도할 경남지방에서의 적색농민조합건설협의회를 조직할 것을 협의하고 그 자리에서 경남적색농민조합동부위원회(慶南赤色農民組合東部委員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최여봉은 이 비밀결사의 책임자로 추대되었고, 이후 김해, 창원, 울산 등지에서 농민조합을 지도하며 활동하였다. 이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1933년 3월 2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월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33년 5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김해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0년 2월 8일에 사망했다.
3. 기타 [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최여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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