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하동리
(현 함경남도 함흥시 연지동)
사망
이명
최항석(崔恒碩)[1]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신근은 1921년 9월 24일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하동리(현 함흥시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0년 5월 송도고등보통학교에서 교가를 일본어로 개정하는 것과 동방요배(東方遙拜)에 반대했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1943년 함북 청진에 소재한 군수공장 하청업체인 협화조북선출장소(協和組北鮮出張所) 노무계에 근무했다.

이때 그는 동료들에게 "일본이 영친왕을 납치하여 일본 황족 이방자와 결혼시킨 뒤 이왕전하(李王殿下)라고 칭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포로와 다름없이 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백두산에서 독립군이 신체 건강한 청년을 골라서 독립군으로 양성하고 있으므로, 한사람이라도 더 애국정신을 갖고 이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43년 12월 1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사기, 황실에 대한 불경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울에 거주하며 조용히 지내다 1999년 9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1990년 최신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이 이름으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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