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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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선주는 1886년 8월 15일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하와이로 이민갔고, 1909년 3월 하와이에서 국민회 가마이지방회 사찰, 11월에는 니지매 지방회의 서기 겸 학무원을 지냈다. 힐로포스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4년 3월 대한인국민회 힐로 구역 경찰부장을 맡았고, 1920년 2월 재무 겸 서기로 활동하였다.

1923년 3월 호놀룰루 한인공동회 발기인, 1925년 4월, 이민 1세와 미주에서 출생한 재미 한인 2세의 상업과 사교를 장려하기 위해 출범한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8년 5월 대한민족통일촉성회 제1차 대회에서 한인 단체의 통합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였다. 1930년 3월 하와이 한인협회를 발기하였고, 1935년 2월 1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중한민중동맹단(中韓民衆同盟團)이 처음 발기되었을 때, 발기자의 한사람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하와이 국민회와 동지회 양 단체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38년 8월 하와이 국민회와 동지회 통합의 결의를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1937년 2월 남베리타니아 거리 50호에 라디오 애플리언스 회사를 창업해 상점을 열고, 냉장고·세탁기·라디오·가스오븐 등 생활 전기 제품과 피아노, R.C.A.와 제너럴일렉트릭 제품과 유성기판 등을 판매하였다.

1939년 2월 중한민중동맹단 부단장에 선임되어 <중한민중동맹단 선전문>을 발행하였다. 외국인 등록법 시행 때에 일본인과 구별된 ‘한국인’ 등록 운동, 미국 정부 요로에 일본의 대미 침략설을 알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원조를 장려하는 외교 활동, 군수품의 대일 수출 방해 활동과 순회 강연을 통한 대한 선전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40년대에는 힉캄 비행장에서 세탁소를 운영하였고, 1945년 이전까지 여러 차례 독립 의연금과 후원금을 지불했다. 1945년 8.15 광복 이후에도 고국 동포들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였다. 또한 <태평양주보> 주필로도 활동하였다. 1971년 3월 11일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최선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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