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1910)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영보촌
(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1]
사망
본관
상훈
건국포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석호는 1910년 7월 7일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영보촌(현 덕진면 영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1년 9월 영암군 덕진면에서 최동림, 최동환, 최병수 등과 함께 무산자(無産者)의 자제는 야학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현사회의 불합리를 타파하자고 결의하고 항일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했다. 1932년 3월 7일에는 동리 야학회관(夜學會館)으로 동리민(洞里民) 200여명을 모이게 하여 '처의 후회'를 관람케 하고 민족의식을 고취, 각성하게 하였다.

1932년 6월 4일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에서 동면(同面) 운암리·영보리·노송리·양암리의 청년 70여명을 규합, 산유회를 갖고 소작쟁의가 발생하고 있는 운암리, 백계리에서 소작권의 이전을 방지하기 위한 시위를 계획, 운암리에 거주하는 박찬수(朴贊秀)·신병진(辛秉鎭)·박한용(朴漢用) 등 지주들의 소작권 취득행위를 응징하다가 체포되었다.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가택침입, 폭력행위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34년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4년간 집행유예를 받고 출옥하였다. 이후 영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3년 8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최석호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1] 전주 최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최규원·최규철·최동림·최병수·최사진·최판열이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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