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구(1864)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용우리
사망
직업
독립운동가
종교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석구는 1864년 11월 24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용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일 새벽 6시 황해도 수안군 수안읍내 천도교구실 앞에서 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2개의 대형 태극기를 선두로 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이고, 헌병분견소로 가서 헌병중위 길야광(吉野匡)에게 조선은 독립되었으니 퇴거할 것을 요구하여 퇴거약속을 받아냈다.

오전 11시 각면으로부터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한 시위군중이 계속 모여들어 사기가 오르자 군중은 헌병분견소로 달려가 또다시 헌병의 퇴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태의 긴박함을 느낀 일본 헌병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오후 1시경 군중이 다시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으나 일제의 무력저지로 해산되었다.

그후 그는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혐의로 1년 3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22년 2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최석구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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