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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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최봉상은 1919년 10월 4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8년 3월 평양 창동교회(倉洞敎會)에서 기독소년척후대와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일제의 박해를 피하여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했다. 1941년 1월 한국 광복군 제5지대 화북지구 공작책을 맡고 있던 김천성(金天成)·백정현(白正鉉)과 접촉하여 광복군에 참가했으며, 그해 5월 산시성을 근거지로 삼고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국군 제10전구 호종남(胡宗南)사령의 유격대에 배속되어 장덕기·유덕량(劉德亮) 등과 함께 베이징·타이위안 등지에서 초모활동·대적선전공작·적정탐지·유격전 등을 전개하였다.
1941년 9월과 1942년 8월 두차례에 걸쳐 국내에 침입하여 김화식(金華植) 목사 등과 만나 국내동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귀대하였으며, 1943년 1월 특별간부훈련반 수료 후 광복군 제2지대 2구대 1분대 부분대장으로 복무하다가 한미군사합작 OSS특수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을 위하여 대기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했다. 1946년 2월 제1차 교포송환임무에 따라 귀국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0년 2월 22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봉상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941년 9월과 1942년 8월 두차례에 걸쳐 국내에 침입하여 김화식(金華植) 목사 등과 만나 국내동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귀대하였으며, 1943년 1월 특별간부훈련반 수료 후 광복군 제2지대 2구대 1분대 부분대장으로 복무하다가 한미군사합작 OSS특수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을 위하여 대기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했다. 1946년 2월 제1차 교포송환임무에 따라 귀국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0년 2월 22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봉상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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