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최명표(崔明杓)
생몰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 성동리
사망지
추서
건국포장

목차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편집]

한국의 사회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명표는 1911년 9월 29일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 성동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 3월 경주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고, 경주 산구병원과 동래산전의원 직원으로 일했다.

1933년 6월부터 경주군 내동면 사방공사장 인부로 일했다. 그는 1934년 2월 하순 이칠성(李七星)의 권유를 받아들여 경주적색농민조합 동지협의회에 가입했다. 이후 1934년 3월 하순 이칠성, 이치용(李致瑢), 최수봉, 김효출(金孝出)과 함께 인왕리 첨성대 부근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이칠성·이치용을 책임으로 하는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4월 상순, 경주군 내동면 제방공사 인부 감독이 되어 공사 인부에게 신사상을 고취시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직된 경주적색농민조합 준비위원회의 동지협의회에서 활동했고, 7월 중순 이후 인부 손수영(孫秀榮)·김윤만(金潤萬)에게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관계와 사유재산제도의 결함을 지적하고 그것을 배격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 또한 같은 해 제방 공사를 하는 인부들을 총 망라해 일전회(一錢會)를 조직해 일제에 맞서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1936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10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 180일 통산), 집행유예 4년을 받고 출소하였다. 이후 경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1년 2월 14일에 사망했다.

3. 기타 [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최명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또한 2019년 3월 11일 경주시 월성동장은 최명표의 배우자인 김상순 씨 가정을 방문해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를 대문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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